[외국인 정책 이대로 좋은가]통계조차 없는 외국인 대상 범죄..."8만여명 사각지대서 신음"

<5> 범죄피해 노출된 외국인들
폭행당하고도 추방 무서워 신고 꺼린채 '억울한 타향살이'
외국인 범죄보다 피해가 더 많은데 '잠재적 범죄자' 색안경
언어·네트워크 취약해 지원센터·사법기관 도움도 못받아


“한국인 사장님 아들이 느닷없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발과 주먹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갈비뼈도 부러졌습니다.”

미얀마 이주노동자 M씨는 얼마 전 한국인 고용주 아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M씨는 고용허가제 노동자로 그의 한국 체류 여부는 고용주 손에 달려 있다. ‘을’인 M씨에게 고용주와 아들의 폭행·폭언 같은 갑질은 일상이었다. 폭행 사건 후 그는 심지어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출입국보호소에 10개월가량 구금되기도 했다. 추가 폭행이 두려워 달아났다가 고용주가 사업장 이탈로 신고한 것. 범죄피해자로서 경제·심리적 지원도 받지 못했다. 반면 가해자인 아들은 불기소 처분됐다. M씨에게 잘못이 있다면 낯선 땅 한국에서 일한 것뿐이었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각종 범죄 등에 노출된 외국인들이 신고는 물론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범죄피해자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지원받은 외국인 범죄피해자는 133명에 달했다. 지난 2016년 91명, 2017년 111명에 비해서는 소폭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전체 범죄피해자 지원 인원이 1만여명에 달한 것에 비춰볼 때 1%에 불과한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인구 대비 국내 체류 외국인 비중인 4.6%와 비교하더라도 이 수치는 매우 낮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이주노동자·결혼이주여성 등 체류 지위가 불안정한 외국인은 늘 범죄에 노출돼 있다. 일부 외국인의 잔혹한 범죄와 이를 과장해 묘사하는 영화 등 대중매체를 통해 외국인은 ‘예비 강력사범’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상은 반대다. 오히려 외국인 근로자들이 폭행과 사기 등 각종 범죄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가운데 살인·폭행·성폭력 등 강력범죄 비중은 96%에 이른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2016년 4만1,004명으로 정점을 찍고 2017년과 2018년 각각 3만3,905명과 3만4,832명을 기록해 하향 안정세다. 더구나 같은 기간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8.6%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줄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국인에 비해서도 범죄 가능성이 낮다. 2017년 기준 내국인 대비 외국인 범죄자 비중은 2%에 그쳤다. 한국에서 범죄 100건이 발생할 때 외국인 범죄는 2건이라는 얘기다. 우리 주변의 외국인 근로자를 ‘예비 범죄자’로 보는 시각이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대목이다.


외국인 사건을 담당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외국인 범죄율은 최근 감소하고 있다”며 “오히려 범죄피해를 당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현재 정부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저지른 범죄는 통계를 작성하고 있지만 외국인이 피해를 입은 경우는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의 경우 범죄피해를 당해도 혹여나 문제가 생겨 강제 출국 등을 당할까 두려워 신고를 꺼린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폭행 등 각종 범죄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국내 체류 외국인 중 범죄피해자는 약 8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측한다”며 “이에 반해 지원센터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범죄피해자들의 사법기관 이용 기피 정서가 이들을 지원제도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외국인 범죄피해자는 체류 자격의 불안정성은 물론 고용 관계상 불이익 등을 염려해 지원제도 이용을 꺼린다. 실제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한 소도시 마사지 업소에서 근무하던 이주여성 F씨는 밀린 임금을 받으려다가 한국인 사장에게 폭행당하고도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 들통 나면 강제 추방되기 때문이다. 그는 범죄피해자 지원제도의 혜택 역시 받지 못했다. 수사기관 혹은 외국인 단체의 범죄피해자 지원제도에 대한 무지도 문제로 꼽혔다.

한국 가해자에 관대한 사법기관의 처분도 지적됐다. ‘한국 사법기관은 한국인을 위한 것’이라는 정서가 외국인 범죄피해자의 지원제도 이용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주노동희망센터 관계자는 “수사기관은 보통 외국인보다는 말이 통하는 한국인 고용주나 남편의 말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 사법체계에 외국인들이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외국인 범죄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보면 직장 관계자와 남편이 각각 21%와 25%로 절반에 달한다. 또 가해자 국적은 75%가 한국인이다. 말이 서툴고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외국인 범죄피해자에게 한국 사법체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어렵사리 외국인 범죄피해자가 지원제도를 이용하더라도 실제 지원을 받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검찰청 심의위원회를 거쳐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지원을 받는 경우는 단 9.2%에 그쳤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외국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의 자발적 모금으로 피해를 보전받는 상황이다. 특히 가해자가 외국인일 경우 관련 규정이 없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범죄피해자가 인권 사각지대에 처한 만큼 관련 조사를 정례화하는 것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순래 원광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내 범죄피해자 조사는 3년마다 이뤄지는 데 비해 외국인은 대상이 아니다”라며 “실태 파악이 전혀 없다 보니 이들을 보호할 제도적 보호장치도 미비해 이 문제부터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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