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이 취약한 체류 지위에 성범죄 노출 가능성까지 높아 이중고를 겪고 있다. 문제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수사당국이 피해자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이주여성은 수사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를 꺼리는 것은 물론 주변 압박에 못 이겨 형사 고소를 취하하는 등 사법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2016년 여성가족부의 ‘이주여성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여성의 경우 성폭력을 당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가 68.2%에 달했다. 그 이유로는 불법체류 신고의 두려움이 47.4%(복수응답), 실직 우려가 36.8%, 사회적 시선이 31.6%, 한국어 부족이 21.1%로 꼽혔다.
이 같은 사유로 이주여성들은 피해 사실 신고에 소극적이지만 운 좋게 사법 절차를 밟더라도 이주여성은 또 다른 장애물과 마주한다. 한국어에 취약하고 사회적 네트워크가 전무하다 보니 주변 권유에 못 이겨 고소를 취하하는 등 정당한 사법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인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주거지를 원룸으로 옮긴 베트남 이주여성 F씨는 한국인 집주인에게 성폭행당했다. 이후 F씨는 즉각 경찰에 신고하고 집주인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F씨는 집주인에게 단돈 100만원을 받는 선에서 합의했다. 담당 검사가 “집주인 재산이 거의 없으니 합의하는 게 낫다”며 설득했기 때문이다. 신영숙 전국이주여성쉼터 대표는 “한국 사정에 어둡다 보니 이주여성들은 합의 과정에서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여성 폭력 및 지원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주여성의 가정폭력을 단순 부부싸움으로 대응하고 적절한 지원제도로 연결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화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신 대표는 “경찰은 말이 통하는 한국인 남성의 말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경찰의 피해자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과 제도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