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우월주의자’를 끌어안고 대담하게 해준다. 인종차별주의적 테러리스트를 규탄하는 대신 보호해주는 셈이다.”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지방선거를 앞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테러라는 외부 희생양을 악용해 유권자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엠레 에르도안 이스탄불 빌기대 교수)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질랜드 이슬람사원(모스크) 2곳에서 무차별적인 총격 테러가 발생한 지 사흘 만에 네덜란드에서 뉴질랜드 ‘보복 테러’로 의심되는 또 다른 총격 사건이 벌어지는 등 전 세계에 테러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미국과 터키의 ‘스트롱맨’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이슬람포비아(이슬람혐오)’와 백인우월주의를 드러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뉴질랜드 총격범인 브렌턴 태런트의 칭송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무슬림을 겨냥한 모스크 테러를 부추겼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슬람혐오 규탄’을 위한 선봉장을 자처하며 노골적으로 무슬림의 분노를 조장하고 나섰지만 실상은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표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최악의 참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안팎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터키는 극악무도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뉴질랜드만큼 사안을 심층 보도하고 있다. 터키의 친정부 매체들은 지난 며칠 동안 “사방에 ‘태런트(뉴질랜드 테러 용의자)가 가득하다” “서구에 파시즘(전체적 극단주의) 물결이 번지고 있다”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터키인들의 민족감정을 들쑤시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오는 31일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그는 사건 직후부터 “뉴질랜드 총기 난사범은 터키인을 노렸다” “이번 테러는 개인의 일탈이 아닌 조직적인 행동”이라며 뉴질랜드 테러를 무슬림을 향한 서방의 공격으로 규정하며 무슬림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17일 주말 유세장에서는 뉴질랜드 정부가 “확산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국제사회에 당부한 테러범 태런트의 범행 현장 동영상까지 재생하며 이슬람혐오를 맹비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 같은 ‘무리수’는 최근 미국과의 무역마찰로 생긴 경기침체 여파로 여당인 ‘정의개발당’이 비난받는 상황에서 ‘이슬람포비아’ 규탄으로 무슬림의 결속을 이끌어 지방선거 때 승부를 보겠다는 계산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엠레 에르도안 이스탄불 빌기대 교수는 “에르도안은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자 중요한 무역 파트너지만 (미국으로부터) 부당한 괴롭힘을 받고 있다’는 식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다”며 터키 정부가 테러라는 외부 변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꼬집었다.
에르도안의 정치적 노림수에 국제사회의 시선도 따갑다.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외무부 장관은 “선거에 악용하지 말라”며 지방선거 유세장에서 뉴질랜드 최악의 테러를 활용해 선거활동을 벌인 에르도안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맹비난했다. 영국 가디언은 “뉴질랜드는 세계의 유력 지도자가 이 동영상을 공개했다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이민자에 대한 공격적 언사를 일삼아온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사태로 도마 위에 올랐다. 반이민·반이슬람주의를 표방한 백인 테러범이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칭송한 사실이 트럼프 대통령의 과거 발언들과 맞물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무슬림을 테러 집단으로 매도하는 등 이슬람포비아를 부추기는 발언들을 일삼아왔다고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테러는 ‘백인우월주의’ 범죄가 아닐뿐더러 나는 백인우월주의자가 아니다”라며 선 긋기에 나서고 있지만 그가 극단적 인종주의 테러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범행의 구실로 이용하고 있다”며 “(이 같은 비난에서 벗어나려면) 대통령은 이슬람 신자를 방어하는 강력한 성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