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어버스와 함께 세계 항공기제조업계를 양분하던 ‘100년 기업’ 보잉이 빠르게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불과 5개월 사이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에서 같은 기종의 비행기 사고가 잇따르며 346명의 목숨을 앗아가면서다. 거기에 불과 열흘 남짓한 사이에 시장이 떠올린 많은 의심과 우려가 하나둘 사실로 드러나면서 보잉이 잃을 신뢰는 ‘대박’ 신기종 B737 맥스로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와 프랑스 항공당국은 비행기 조종시스템(MCAS), 급강하 방지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지난해 인도네시아 사고 이후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준비해왔다는 보잉은 최근 부랴부랴 이를 적용했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첫 사고 이후 5개월, 심지어 두 번째 사고까지 발생한 ‘사후 약방문’인 탓이다.
의심은 보잉 737 맥스의 개발·승인 단계로도 거슬러 올라갔다. 최근 미 교통부에 이어 연방검찰도 항공당국인 연방항공청(FAA)과 보잉을 연계해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부에서는 이들의 유착관계를 의심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FAA 내부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새 항공기의 안전성 승인에 보잉이 입김을 행사했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보잉이 눈앞의 이익에 눈멀어 안전성 확보에 소홀했고 미 항공당국 역시 최소한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못했다는 정황이 속속 확인되는 셈이다.
당분간 사람들은 보잉이든 미 정부든 불신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을 것이고 영구적으로 B737 맥스 기종의 운항금지를 발표한 인도네시아보다 훨씬 단호해질 수도 있다. 이유가 방심이든 자만이든 탐욕이든 보잉과 미 정부는 시장과 고객의 신뢰를 저버렸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보잉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풋옵션’ 투자가 기존 20배로 늘어나며 ‘보잉 보이콧’이 시작됐다. 보잉이 직면한 위기가 우리에게는 ‘강 건너 불’일 수 있다. 하지만 1등의 자만과 이익 창출에 가려진 채 가장 중요한 ‘신뢰’라는 자산을 잃어버린 보잉의 위기는 우리 제조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