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정준영/연합뉴스
#. 최근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공유되고 있는 서툰 그림체의 한 만화는 한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서 비롯한 리벤지 포르노(몰카 유출)의 피해자가 된 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전 남자친구가 퍼뜨린 자신의 ‘성관계 몰카’가 남자 대학 동기들을 거쳐 온라인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되고, 소식을 들은 여성이 그 영상을 지우기 위해 작성자에게 댓글로 호소하고, 영상 속 여성을 품평하는 댓글에 2차 가해를 입은 후 켜켜이 쌓인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내용이다. 만화를 그린 이는 바로 만화 속 주인공 여성의 동생. 만화의 제목은 ‘실제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 동생이 그린 만화’다.
가수 정준영씨가 다수의 ‘성관계 몰카’ 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고 있는 가운데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의 이야기가 재조명받고 있다. 정 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21일로 예정된 가운데 정 씨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받게 될 형량이 아무리 길어도 7년 이하가 되리라는 추측이 나오면서다. 정 씨의 혐의와 관련한 법 조항은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해 가중처벌을 한다고 해도 최대 7년 6개월까지만 형을 내릴 수 있다. 몰카 유출 등으로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들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받는데 비해 처벌 수위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의 동생이 그린 만화
사실 리벤지 포르노 범죄자들의 처벌이 약한 수준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는 지난해부터 나왔다. 지난해 가수 구하라 씨가 전 남자친구 최종범 씨로부터 폭행 및 리벤지 포르노 유포 협박을 받는 사건이 터지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최**과 이하 비슷한 리벤지포르노범들 강력 징역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리벤지포르노 가해자들에게 처해지는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과 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꼬집는 내용이었다. 청원은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사 청원 기간 내에 27만 5,806명이 서명했고, 청와대의 답변을 끌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청와대 답변 역시 국민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청와대 측은 당시 “법무부도 강화된 처벌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요”라고 답했다. 이어 “유포 관련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내용의 ‘범죄수익처벌법’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법안들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리벤지 포르노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답변 후 5개월이 지난 지금도 큰 변화는 없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법) 개정을 통해 성관계 몰카의 형량은 최대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지만 청와대에서 답변한 범죄수익처벌법은 미비한 상황이다. 성관계 불법 영상 촬영 및 유포를 제재할 수 있는 처벌 조항 등이 추가로 마련된 적도 없다.
여성들은 특히 몰카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2차 유포한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조항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행 성폭법에 따르면 영리 목적으로 몰카를 유포할 경우 처벌 가능하지만 영리 목적이 아닌 경우 처벌의 근거가 불분명하다. 재유포자를 처벌하는 조항(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하지만 징역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수준에 그친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불법 촬영물 재유포자에 대한 처벌 근거를 명확히 한 성폭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여성계는 현재 정준영 사건을 두고 모든 관심이 정 씨의 혐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에만 쏠려 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몰카 유출 및 공유’ 등에 대해서도 경고를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앞서 14일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한 성명문을 발표하고 “불법촬영물을 생산, 소비, 유포한 모든 자들을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폭법 등을 빨리 손질해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현정 인턴기자 jnghnji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