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더 길티'] 사건의 단서는 오직 통화 내용뿐…수화기 너머 '상상의 나래' 펼쳐진다

덴마크 출신 구스타브 몰러 감독 데뷔작
러닝타임 내내 카메라 한 공간만 머물러
스릴러 형식 안에 '속죄' 관한 성찰 담아

‘더 길티’의 스틸 컷.

검은 화면 위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이윽고 화면이 밝아오면 한 남자가 귀에 덮어쓴 헤드셋이 클로즈업된 채로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경찰 신고센터에서 일하는 이 남자가 전화를 받으면 비로소 소리가 멈추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낯설지만 강렬한 오프닝은 이 영화가 시각보다는 청각이, 화면보다는 사운드가 중요한 작품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덴마크 출신의 구스타브 몰러 감독이 연출한 ‘더 길티’는 그동안 관객들이 어디서도 접하지 못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스릴러다. 감독은 이 영리한 데뷔작을 통해 스스로 부여한 형식적 제약 안에서 개성 있는 작품 연출의 돌파구를 찾는 재능을 보여준다.

아스게르(야곱 세데르그렌)는 총기 사고를 내고 긴급 신고 센터로 좌천된 경찰이다. 어느 날 수상한 신고를 접수한 그는 직감적으로 전화를 건 여성 이벤(제시카 디니지)이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스게르는 곧장 이벤의 딸에게 전화해 “엄마를 돌려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뒤 피해자를 구출하기 위해 사방팔방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 있는 동료들은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더 길티’의 스틸 컷.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은 인물의 생김새와 공간의 짜임새를 상상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허용된 상상의 폭은 넓지 않다. 카메라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개 극장에 앉은 관객들이 하는 상상이란 이야기 전개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 정도에 그친다.

‘더 길티’는 이러한 영화 관람의 기본 명제를 배반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90분 내내 신고센터 안에만 머물 뿐 단 한 번도 바깥으로 뛰쳐나가지 않는다. 그 흔한 플래시백이나 주인공의 상상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통화 내용에만 의지해 사건의 단서를 찾아가는 아스게르처럼 관객 역시 귀를 쫑긋 세우고 수화기 너머에 있는 인물의 상황과 사연을 각자의 상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더 길티’는 범죄 사건의 전말을 추적한다는 점에서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인간의 마음자리를 진중하게 성찰한다는 면에서 심리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한 작품이다. 아스게르가 이벤의 딸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을 때, 이벤이 아스게르를 향해 “당신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따스한 온기가 피어난다.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인간은 저마다 크고 작은 죄를 짓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잘못을 똑바로 깨우치고 속죄하고자 발버둥 칠 때 보다 숭고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일깨워준다.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관객상·심사위원상을 받았으며 독창적인 형식과 흥미진진한 서사 덕분에 할리우드에서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기로 했다. 27일 개봉.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씨네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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