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업황에 백기든 마이크론...수급 호재라지만 위기감도 커져

<마이크론 메모리 5% 감산>
삼성·하이닉스 반도체 공급과잉 숨통트이겠지만
불황에 IT기기 수요 감소·무역전쟁 등 변수 여전


21일 마이크론의 월간 메모리 생산량 5% 감산 소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첫째, 1·4분기 마감을 앞두고 경고음이 커졌던 메모리 시황에 대한 우려가 글로벌 3강(强) 업체 중 한 곳의 감축 선언으로 공식화됐다는 점이다. 메모리 업황이 예상보다 더 나쁘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한편으로는 마이크론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의 힘겨루기에서 먼저 백기를 든 만큼 메모리 수급에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생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올 1·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46.73%(전년 동기 대비) 빠진 8조3,293억원까지 하락한 삼성 등 국내 업체에는 희소식이다. 마이크론의 긴급 처방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양면적이라는 얘기다. 업계의 한 고위 임원은 “마이크론의 감산 결정은 메모리 시황의 난맥상을 보여준다”며 “하지만 메모리 정점에 서 있는 삼성과 하이닉스로서는 생산량 조정 등 경영에 운신의 폭이 커질 수 있다”고 짚었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실적에 드리웠던 암운이 조금은 걷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서버용 D램 수요가 2·4분기부터 반등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3강 마이크론의 백기…악화일로 업황 반영한 고육책=마이크론은 D램에서 삼성(41.3%, 2018년 기준), 하이닉스(31.2%)에 이은 3위(23.5%)다. 낸드도 삼성·도시바와 3강으로 분류된다. 이런 마이크론이 실적 발표 직후 D램과 낸드 생산량을 모두 5%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캐파를 100이라고 치면 앞으로 95로 낮추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이는 삼성과 하이닉스가 지난해 4·4분기 실적 발표 당시 ‘시황에 따라 생산량을 유연하게 가져가겠다’고 밝힌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내 업체의 경우 기존 생산량은 손대지 않고 신규 투자(생산량)인 ‘+α’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는 의미였다. 그런 만큼 마이크론의 감산 선언은 공급과잉에 허덕여온 메모리 업계에 호재다. 업계의 한 실무자는 “공장 가동률을 낮추면서까지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최근 메모리 가격 하락이 가팔라 이대로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수급 균형을 위한 긴급 처방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라고 진단했다. 이재윤 유안타증권 연구원도 “삼성이 물량 밀어내기를 통해 재고 소진에 나서고 있는데 하이닉스와 마이크론까지 가세하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비관론이 있었다”며 “마이크론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삼성과 하이닉스가 마이크론의 결정을 뒤따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임원은 “예전만 해도 감산 결정은 반도체 기업들이 모두 적자일 때 있었다”며 “더구나 마이크론이 백기를 들면서 수급도 좋아질 개연성이 커졌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적 암울한 삼성·하이닉스, 회복 시점 빨라지나=마이크론의 이번 결정이 유독 더 주목받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기업의 실적 악화 때문이다. 삼성만 해도 1·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8조원을 겨우 웃돈다. 최악으로는 6조7,000억원까지 보는 곳(유진투자증권)도 있다. 시장 컨센서스를 충족한다고 가정하면 2016년 3·4분기(5조2,000억원) 이후 2년6개월 만에 최악이다. 세부적으로는 반도체(DS)의 경우 메모리 평균판매가격(ASP) 낙폭이 예상보다 훨씬 큰 상황임에도 출하량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디스플레이도 애플의 판매 부진 등으로 2016년 1·4분기(-2,700억원) 이후 3년 만에 적자가 예상된다. 그나마 스마트폰(IM)사업부가 ‘갤럭시10’ 효과로 괜찮지만 3월 초에 출시된 만큼 본격적인 실적 호조는 2·4분기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메모리 기업인 SK하이닉스는 D램 의존도가 80%나 돼 더 심각하다. 시장 컨센서스는 2조800억원 수준인데 1조원을 겨우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심심찮게 나온다. 지난해 4·4분기 4조4,000억원을 올렸음을 감안하면 낙폭이 너무 크다.

그간 2·4분기 전망도 잿빛 톤이 강했다. △4월 인텔의 신규 중앙처리정치(CPU) 출시에 따른 고용량 메모리 수요 증가 △4월부터 시작되는 5세대(5G) 통신 상용화 등의 호재가 있지만 경기 하락에 따른 정보기술(IT) 기기 수요 감소가 더 크다는 분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분쟁이라는 매크로 변수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크론 감산 뉴스는 한 줄기 빛이 되는 모양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5% 감산한다는 것은 웨이퍼 인풋을 줄인다는 뜻”이라며 “효과가 나기까지 시차가 2개월 정도 걸려 수급에 긍정적인 영향은 일러야 5월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수급에 부담을 일부 덜 수 있겠지만 큰 임팩트를 기대하기는 무리”라며 “애초부터 반도체 업황으로 ‘상저하고’를 말해온 만큼 2·4분기 기대 수준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이상훈·고병기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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