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했던 인천 동구 송림동은 최근 40㎿급 연료전지 발전소가 착공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끄러워졌다. 두산건설·한국수력원자력·삼천리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인천연료전지는 오는 2020년 준공을 목표로 한 이 사업을 위해 지난 2017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의 발전사업 허가, 지난해 말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발전소 건축 허가까지 받았다.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으로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신재생에너지의 한 종류다. 지역주민들은 의견 수렴 절차가 전혀 없었다고 반발하면서 지난 1일 예정된 착공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주민 반발의 기저에는 공포감이 자리 잡고 있다. 발전소 허가 취소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인천 중·동구 평화복지연대의 김효진 사무국장은 “연료전지 발전소가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발전소에 대한 기본적인 불안감이 있지 않냐”며 “상용화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발전소를 주택지 인근에 주민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추진하는 데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발전소 ‘포비아(공포증)’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열발전이 지진을 촉발한 포항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41개 이상 발전소 입지를 두고 지역주민과 발전사업자 간 갈등이 있다. 발전소의 종류와 지역 여건 등에 무관하게 ‘발전소’는 이미 지역주민들에게 혐오시설이다. 경상도 지역만 봐도 대형 사고의 위험성을 이유로 건설이 중단된 울진의 신한울 3·4호기부터 사천의 대규모 태양광발전소, 경주 산내면의 풍력발전소, 포항의 바이오매스 발전소 등 신재생에너지까지, 또 통영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역시 갈등 중이다. 산이 많은 강원도에서는 주로 태양광과 풍력발전소 입지를 두고 다툼 중이다. 전라도와 충청도 역시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소·석탄화력발전소 입지를 앞두고 지역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지역민들이 발전소를 기피하는 것은 우선 사고 가능성 때문이다. 태양광발전의 경우 땅값이 싼 전국의 산지 임야에 집중적으로 설치되는데 산림 훼손에 따라 태양광 산사태가 잇따라 발생했다. 자연조건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하기 힘든 신재생에너지를 보완하기 위해 전력을 저장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지난 1년간 20회가 넘는 화재가 발생하면서 현재는 정부가 가동을 중단시켰다. 특히 이번 포항 지진을 유발한 지열발전의 사례처럼 정부가 사고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새로운 형태의 발전소에 대한 공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발전소가 들어서면 미세먼지와 다이옥신 등 환경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나주혁신도시의 고형폐기물(SRF) 발전소를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쓰레기를 태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다이옥신이 발생해 주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며 나주 시민들이 막아서고 있다. 인근의 한 주민은 “입주하고 보니 SRF가 생활 쓰레기가 주원료라는 것을 알게 됐고 환경호르몬이나 미세먼지가 더 배출될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고 말했다. 나주혁신도시 주민들은 LNG발전소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가동 한 번 못한 지역난방공사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역난방공사의 한 관계자는 “LNG발전보다 오염물질이 덜 나온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도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음성군과 경남 통영시에서는 정부가 최근 미세먼지 대책으로 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 LNG발전소도 반대하고 있다. 생활권 인근에서는 초미세먼지가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재생에너지와 LNG발전 등 분산형 전원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은 지역 갈등을 더욱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는 “에너지 집약도가 낮을수록 더 많은 지역에 발전소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지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들이 나와야 한다”며 “현재 발전소가 들어와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 새로운 발전소 입지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의 발전사업 허가 체계에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손을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3㎿ 이상 발전사업 허가는 산업부 전기위원회가 담당하는데 재무·기술 능력, 사업 이행 가능 능력을 따져 발전사업의 면허를 준다. 여기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는 하지만 주민들에게 직접 묻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전기위원회에 제출한다. 발전 인프라를 확충하고 싶어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찬성하는 주민의 수를 과대 포장하는 경우가 잦다. 기본적으로 동의 대상 주민과 찬성 비율 등 명확한 기준조차 없이 전기위원회의 심의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도 문제다. 이처럼 지역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발전사업 허가가 결정되다 보니 이후 관할 지자체에서 개발행위 허가, 설치 공사계획 인가 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역민들과 갈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산업부 전기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발전소 입지 반대가 심한 지역에서도 지자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고되는 경우가 있어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어 올해 안에 처리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강광우·박형윤·김우보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