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검찰개혁 차원에서 줄곧 논의됐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 검찰도 도입 찬성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자유한국당은 반대 입장이다. 20대 국회에서 여야가 발의해 계류 중인 5건의 공수처 법안은 검사의 범죄행위를 공수처가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 역시 경무관(또는 치안감) 이상 고위직 수사를 공수처가 담당하고 고위공직자가 퇴직하더라도 2~3년까지 공수처에서 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김학의·버닝썬’ 사건으로 공수처 설치요구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선거법과 함께 공수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문제를 놓고 한국당의 반대와 나머지 야권의 복잡한 셈법으로 입법에 난항을 겪고 있다. 공수처 찬성 측은 고위공직자 부패를 근절하고 검사들의 초과권력을 분산하고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검찰조직과 검찰권의 운용방식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조직을 만들 게 아니라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검찰개혁의 올바른 방향이라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심장질환 등 숱한 질병이 비만에서 유래된다. 살 빼라는 말, 다이어트라는 말이 가장 흔한 말이 된 이유다. 세상사 이치는 똑같다.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하면 질병이 유발되는 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검찰이 고도비만에 걸린 조직이라는 진단은 이미 오래전 나왔다. 검사는 직접수사권·수사지휘권·기소권·불기소권·공소유지권 등을 한 몸에 지닌 막강한 권력기관의 일원이다. 심지어 외국인관리·출입국관리·재소자관리 등까지도 검사들이 주축이 된 조직이 맡고 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조직이라는 한마디가 모든 걸 웅변한다. 많은 사람이 검사들에게 스폰서나 로비라는 이름의 조건 없는 호의(?)를 베풀려 애쓴다. 집권층은 인사를 통해 자신의 의중을 충실히 따르는 검찰로 만들고자 한다. 검찰이라는 막강한 권력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름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부패하기 쉬운 조직, 정치적 외풍에 쉽게 휘둘리는 조직, 민망한 이미지의 검찰상은 검찰조직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된 바로 그 때문이다. 권력이 초 집중된 조직 자체가 대한민국 검찰의 핵심 문제라면 해결 방법은 자명하다. 검찰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상호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원리를 되찾게 해야 한다.
정부는 검경 수사권조정과 공수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두 가지 방안 중 검경 수사권조정은 반드시 필요하고 환영한다. 경찰을 응원해서가 아니다. 수사기관인 경찰의 권한남용이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지휘·감시조직이 검찰의 탄생 배경이고 본질적인 역할이다. 직접수사를 하지 않고 수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과잉수사와 그로 인한 국민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검찰이다. 철저하게 경찰의 수사권과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분리하자. 미국의 대배심처럼 경찰과 검찰 모두 국민이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만들자. 양수겸장, 검경 모두 개혁할 수 있는 방안이 이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본래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면 상호견제와 균형은 저절로 달성될 수 있다.
반면 공수처는 검찰개혁 방안이 아니라 검찰 견제수단이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 장자연 사건 등도 공수처 도입 여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검찰을 견제하거나 수사할 수 있는 조직이 있었다면 검찰이 그런 식으로 사건을 뭉갰다는 의혹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조직인 현재의 검찰을 그대로 둔 채 검찰 견제가 가능한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공수처를 검찰과 대등한 권력기관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검찰을 직접수사하거나 견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만들려면 전국에 지부를 둔 검찰과 같거나 적어도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가뜩이나 강력한 수사기관들이 수시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우리나라다. 또 하나의 막강한 수사기관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일각의 우려처럼 공수처가 정치적 외풍에 휘둘린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 공수처장 후보를 어떤 방법으로 추천하는지, 공수처 구성원들의 인사권을 누가 행사하는지 등은 사실상 지엽적인 문제다. 이런저런 우려 때문에 막강하지 않은(?) 기관을 만든다면 결국 있으나 마나 한 조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이든 딜레마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대한 몸을 거추장스러워하는 사람에게는 살을 빼게 하는 게 정답이다.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 스스로 하지 못하면 강제수단이라도 동원해야 한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다. 살을 빼지 않은 채 혈압약·당뇨약 등을 처방해주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거대한 검찰조직과 검찰권의 운용방식을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검찰개혁의 바른 방향은 검찰의 권한을 줄여 전문적 수사지휘와 기소권 행사기관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검찰권을 현재대로 둔 채 검찰과 유사한 조직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과거 여러 사건에서 특별검사 도입 등 별수단을 써봤어도 검찰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검찰조직 자체의 힘을 분산시키는 개혁을 단행하지 않는 한 일시적 검찰 견제수단은 미봉책으로 그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