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야단법석] 감옥살이보다 '신상정보공개'가 더 무서워

징역보다 무서운 부수적 처분
신상정보공개등록·고지 등은 인생길 막혀
음주운전 범죄자도 '운전면허취소' 무서워 해
생계형 운전 많아 무면허로 다시 걸리기도


“법이 강화돼서 처벌을 피할 수 없다면 정신 차릴 겸 감옥에 다녀오는 건 차라리 괜찮아요.”

성폭력 범죄로 재판에 넘겨진 아들 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러 온 부모가 꺼낸 말이라고 했다. 징역형이 괜찮다니 얼핏 들었을 땐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신상정보공개 만큼은 꼭 막았으면 좋겠어요.”

뒤이어 덧붙인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최근 만난 한 서초동의 A변호사가 꺼낸 의뢰인 이야기다. 추행·간음 등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성 관련 범죄에 연루될 경우 형을 낮추기 어렵다는 것을 가해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해자 혹은 가해자의 가족들은 징역형보다 신상정보등록·공개·고지, 전자발찌 착용, 성폭력프로그램 이수 등의 부수적 처분을 더 무서워한다고 했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나이의 상대적으로 젊은(?) 가해자들은 성범죄자 기록으로 인해 취업 등 인생길이 막힐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신상정보 고지 명령이 나올 경우, 해당 성범죄자는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지역 주민들에게 본인이 성범죄자이고 이사 왔음을 알려야 한다. 예를 들어 A아파트에서 B아파트로 이사하면, B아파트에 본인의 정보를 고지해야 한다. 사회가 좁을 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우리나라에선 이 명령의 부담감이 더 심하게 다가온다.

물론 부수적 처분이 쉽게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전과가 있는 누범이거나 죄질이 나쁜 경우 등에 한해 처벌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무죄였던 1심과 달리 지난달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도 부수적 처분이 내려졌다.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5년간 취업제한, 관할기간에 신상정보 제출 등이다. 안 전 지사는 현재 항소심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음주운전을 저지른 범죄자들도 ‘차량몰수’·‘운전면허취소’ 같은 부수적 처분을 더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음주운전 범죄자들은 다른 범죄에 비해 ‘운전’이 생계 수단인 영업사원·운전기사 등이 많은 편이다. ‘윤창호법’ 시행으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더해 올해 6월부터는 면허취소 기준이 현행 0.1%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더 엄격해진다.

전문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경제 사정이 좋지 않거나 개인적 이유로 취업이 어려워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이 운전을 업으로 택한다. 이들은 차량을 몰수당하거나 면허가 취소되면 당장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면허가 취소된 후 무면허 운전을 감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면허 운전으로 한번 걸린 사람은 최소 10번의 무면허 운전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행정법원 사건 중 절반은 난민불인정 취소소송, 나머지 절반은 운전면허취소처분 취소소송이란 말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중순 오후10시께 서울 서초구 서초IC 인근에서 서초경찰서 교통 경찰들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서울경제DB

‘징역도 무섭지만 감옥은 살고 나오면 그만’ 이라는 역설적인 현상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으로 갈수록 ‘형사사건의 민사사건화’ 추세가 나타난다. 징역보다 강한 부수적 처분이 오히려 범죄를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서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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