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목표를 세우자 국세청은 유흥업소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이후에도 탈세혐의가 큰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민생침해 탈세사범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별다른 효과는 없었습니다. 대부분 바지사장(명의위장 사업자)들이어서 실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나 세금추징까지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과세당국이 다시 칼을 뽑았습니다. 국세청은 지난 20일 서울 강남 클럽 아레나의 실소유주로 지목된 강모 씨를 경찰에 고발했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중심으로 1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YG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전격 세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다음날에는 빅뱅 멤버 승리가 사내이사를 지냈고 마약 유통과 성폭행 의혹이 불거진 ‘버닝썬’ 특별 세무조사를 단행했습니다. 고의·지능적 탈세 혐의가 큰 전국 21개 유흥업소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계획도 이례적으로 밝혔습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혐의가 확인되면 검찰에 고발하던 과거 방식과 달리, 착수 시점부터 검찰과 협업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 받아 조세범칙조사로 진행하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유흥업소 탈루 유형
국세청 내부에서도 유흥업소 조사는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털어놓습니다. 봐주기 의혹에 대해서도 억울하다는 하소연을 합니다. 대다수가 ‘바지사장’을 앞세워 소득을 숨기는 이른바 ‘모자 바꿔 쓰기’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면 보스가 나이트클럽 웨이터에게 “이 가게를 당분간 너가 맡아봐라” 식으로 말하는 걸 가끔 볼 수 있습니다. 룸쌀롱, 클럽, 호스트바 등의 유흥업소에서 재산이 많지 않은 종업원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사업자 등록을 한 뒤 체납과 폐업을 반복하는 식입니다. 종업원들은 선금으로 수백만원을 받고 매달 수십만원씩 사례비도 챙기며 사업자 등록에 필요한 각종 서류와 휴대전화·통장 등을 제공합니다.
국세청이 수백억원대의 탈세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강남 클럽 아레나가 이런 케이스입니다. ‘바지사장’인 아레나 대표 6명이 일관되게 본인들이 실사업자임을 주장하자 과세당국은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국세청은 아레나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벌여 260억원을 추징했으나, 실제 탈세 액수는 그보다 더 크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고액 세금 부과에다 경찰의 지속적 출석 요구에 압박을 느낀 3인이 본인들은 명의만 대여했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경찰은 강모씨가 실사업자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 같은 사례는 상당히 흔합니다. 사업자 A씨는 동일 건물에서 층을 나눠 다수의 명의위장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모자 바꿔쓰기’ 수법으로 조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본인 명의로 운영하던 유흥업소는 지난 2016년께 폐업하고 4개 업체를 타인 명의로 운영해왔던 것입니다. 또 다른 실사업자 B씨는 친인척 명의 위장사업자를 등록해 수입금액을 분산(누락)하고 종업원 C, D, E씨 명의로 폐업과 개업을 반복하다 국세청에 꼬리가 잡혔습니다.
제3자 명의로 등록한 일반음식점, 모텔 등의 신용카드 단말기로 결제하는 ‘꼼수’도 종종 포착됩니다. 클럽에서 결제를 했는데 영수증에는 ‘XX치킨’으로 나오는 것인데요. 유흥주점은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점을 의식해 위장가맹점을 통해 수입금액을 분산시킵니다. 지난해 강남지역 유흥주점 업주 A(50)씨는 일반음식점 명의로 개통한 카드 단말기로 결제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경찰에 적발돼 구속됐습니다. A씨는 일반음식점 2곳에서 신용카드 이동식단말기를 개통한 다음, 이 단말기를 자신이 운영하는 유흥주점 19곳에 보내 유흥주점 매출을 일반음식점 매출인 척 결제한 혐의입니다. 그 기간도 무려 4~5년에 달합니다.
아레나 탈세수사
온라인 입금이나 현금으로 결제시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것도 과태료 대상입니다. 유흥업소의 경우 통상적으로 현금 결제 비중이 높습니다. 버닝썬에는 VIP메뉴로 만수르 세트 1억원, 대륙세트 5,000만원, 천상세트 1,000만원짜리가 존재하고 실제 많이 팔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상당수가 술값을 외상으로 달아놓은 뒤 나중에 현금으로 지급한다고 합니다.
버닝썬 조사가 YG엔터테인먼트 세무조사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YG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양현석 대표 개인뿐 아니라 역외 탈세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습니다. 100여명의 조사관들은 재무 담당부서뿐 아니라 공연마케팅, 신인개발 등 여러 부서에서 관련 서류를 확보했습니다. 세무당국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해외공연 수익을 축소 신고하고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탈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또 YG엔터테인먼트는 양현석 대표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서교동 클럽 ‘러브시그널’을 유흥업소로 운영하면서도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해 개별소비세 탈루 혐의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의 지시로 클럽 아레나·버닝썬에 대한 경찰 수사와 과세당국의 세무조사가 본격화됐고 전국 21개 유흥업소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됐습니다. 이 총리는 지난 14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국세청 등 관계기관도 유사한 유흥업소 등이 적법하게 세금을 내고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 철저히 점검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과세당국이 ‘바지사장’ 뒤에 가려진 실소유주를 찾아내 세금 추징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