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본 선임기자의 淸論直說] "美가 中 견제하는 지금이 5G.AI 등 첨단기술 개발 호기"

[신기욱 美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장 단독 인터뷰]
실리콘밸리 中·印 등 진출 활발한데 우리는 투자 미미
자칫하다간 '하청기지' 전락 우려…틈새 활용 해볼 만
벤처펀드 활성화로 美 기술기반 스타트업 적극 투자를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장은 한국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두고 논쟁을 하느라 글로벌 무대에서 벌어지는 미래기술 선점전쟁 대비에 소홀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에 와 기술전쟁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는지 느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물론 중국·일본·인도 등이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한국 돌아가는 것을 보면 너무 소모적이고 절박감이 없습니다. 첨단기술 전쟁의 최전방인 실리콘밸리에서 미국의 견제로 중국이 주춤한 사이에 그나마 한국에 틈새가 생겼습니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난기류에 휩싸인 한반도 정세를 조언하기 위해 최근 서울을 다녀간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월터 H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소장은 지난 22일 신라호텔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한국이 깜빡하면 하청국가가 될 수도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미국에서 APARC의 영향력이 큰데 어제(21일) 청와대에서 무슨 조언을 했는가.

△지금은 한미 간의 공조가 어느 때보다 소중한, 매우 중요한 국면이다. 한국이 어설픈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하지 말고 이제는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를 적극 설득해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북한은 제재완화에 관심이 많다. 한국은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설득하고 미국·중국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약속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는 경제 얘기를 하자.

-좋다. 말씀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뭔가.

△실리콘밸리에서는 첨단기술을 놓고 피 튀기는 전쟁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패러다임을 갖고 여야가 다투고, 경제전쟁터에서 싸워야 할 기업 총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총수들과 커피 마시며 경내를 산책할 것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에 오셔서 첨예한 기술전쟁터의 긴박함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실리콘밸리를 방문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를 들르기는 했지만 주로 교민사회를 격려하는 것이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창조경제를 한다면서도 재임 시 한번도 오지 않았다. 요즘 서울경제신문이 ‘과학기술 골든타임 놓치면 하청국가 전락’이라는 시리즈를 하던데 주제를 잘 잡았다.

-그렇게 한국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갖고 있나.

△전쟁터를 한국 대통령이 20년간 안 갔다면, 심하게 얘기하면 직무유기가 아닌가. 실리콘밸리에 중국 펀드가 굉장히 많은데 한국은 매우 적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삼성전자 미주법인에서 5,000억원 정도 굴리고 글로벌 시장 전체로는 2조원가량이라고 하던데 중국에 비하면 굉장히 미미한 것이다. 삼성 외 다른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 지난해 말 자살한 스탠퍼드대 중국 교수(장서우청) 한 명이 5,000억원가량을 운용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자율주행차 등 100개 이상의 벤처에 투자하지 않았나. 다른 기업들도 중국 정부와 협조해 엄청나게 투자했다.

일본도 아베 신조 총리가 4년 전 실리콘밸리에 다녀간 뒤 투자와 교류·진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아베가 당시 스탠퍼드대 총장과 같이 연설하고 구글·애플·트위터 등 실리콘밸리 리더 10명과 라운드테이블도 갖고 테슬라 전기차도 탔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하면 안 되나. 도요타나 혼다 등은 물론이고 손정의 회장도 실리콘밸리에 많이 투자한다.

스탠퍼드대만 해도 중국이나 인도계 교수는 각각 100여명에 달하는데 한국 교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APARC 산하 1년 과정 글로벌 어필리에이트 프로그램(Global Affiliate Program)에도 중국·일본·인도 기업이나 공무원이 대부분 참석한다. 한국은 간헐적으로 참여하는 데 그친다.

-실리콘밸리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그렇게 큰가.

△실리콘밸리는 백인뿐 아니라 중국·인도 등 아시아계 인재의 공헌이 매우 컸다. 지난 수년간 중국의 공적·사적 펀드가 대거 들어와 첨단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했고 중국인들이 부동산도 많이 매입하며 집값이 크게 올랐다. 약 2년 전부터 중국 정부에서 해외투자를 엄격히 제한할 정도가 됐다. 중국이 만만치 않은 이유는 미국에 인재들이 많이 와 교육을 받고 경험을 쌓은 후 본국에 돌아가든가 아니면 남아 교류 협력을 활발히 한다는 점이다.

-현지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약하지 않나.

△그렇다. 그나마 삼성 같은 기업이 실리콘밸리의 비중을 많이 늘리고 연구개발도 대부분 인하우스로 하던 모델에서 유망한 벤처기업을 매입하는 실리콘밸리 방식으로 전환해 다행이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이나 투자사가 운영하는 벤처펀드 등은 왜소하다. 정부 조직은 KOTRA 등이 있으나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제대로 연결하는지 의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성격과 조직을 바꿔야 한다. 한국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배우겠다고 자주 오지만 대부분 KOTRA가 소개하는 한인 기업 몇 군데를 돌아보거나 구글·페이스북 등을 방문해 사진을 찍는 데 그친다.

-정말로 긴장감을 가져야겠다.

△맞다. 2001년 스탠퍼드대 교수로 부임했을 때 구글·페이스북·트위터·우버 등은 벤처였거나 아예 없는 것도 있었다. 앞으로는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다. 삼성도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데, 바이오헬스케어와 자율주행차 등이 남아 있다. 물론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중국 화웨이가 5세대(5G) 기술을 선점하자 미국의 견제가 심한데.

△5G는 AI·자율주행·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에 가장 중요한 인프라여서 심각하게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그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비판적인 실리콘밸리의 기업인들도 중국에 대한 첨단기술 전쟁은 비교적 좋게 평가한다.

-스탠퍼드대는 어떤가.

△지난해 가을 미국 명문대 출신의 중국 학자가 비자가 늦어져 APARC에 포닥(박사후연구원)으로 거의 못 올 뻔했다. 상하이에서 오려던 방문학자는 아예 비자가 거부됐다. APARC에 재직한 지 18년 됐는데 처음 있는 일이다. 미중 간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스탠퍼드대에 오는 중국 학생이나 포닥·방문학자가 모두 재원이고 미국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다.

-미국은 첨단기술을 외교·안보전략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데.

△첨단기술은 군사력 등 안보와 직결된다. 실리콘밸리에는 이미 중국 자본이 깊숙이 들어왔고 중국계 인재들도 많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갖는 비중이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다 없앤다면 미국이 무너진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활용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어떻게 될 것 같나.

△일단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이 지속되면 양국 모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전면전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성격이 커 완전한 타결 역시 쉽지 않다. 첨단기술 전쟁은 제로섬 게임이라 타협이 쉽지 않다.

-한국에는 어떤 기회와 위험이 있나.

△단기적으로는 리스크가 크다. 한국이 원자재 등을 중국에 보내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통신사들도 이미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는 경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이 주춤하는 이 시점이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라 제약이 훨씬 적어 적극적으로 이 기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협력해 5G·수소기술·AI 등 좋은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에서 아직 초미세먼지를 필터링하는 기술이 없다고 해 충격을 받았다. 이곳 기술자들에게 물어보니 ‘초미세먼지까지 잡을 수 있는 기술이 가능하지만 이곳에서는 관심이 적다’고 하더라. 한국이 테스트하기 좋은 시장이고 효능이 확인되면 중국·인도 등에 진출할 수 있다고 하니 관심을 보여 한국 기업을 소개했다. 벤처펀드를 많이 만들어 기술기반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글로벌 리더가 나올 수 있다.

-스탠퍼드대는 기술이전이나 창업·산학협동이 활발한데 그 비결은.

△스탠퍼드대에 이런 농담이 있다. ‘똑똑한 학생은 졸업 후 대학원을 가거나 법대나 의대를 가서 교수·변호사·의사가 되는데, 정말 똑똑한 친구는 중퇴하고 창업한다. 야심이 있는 친구는 고생을 하더라도 스타트업을 선호한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등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한국과 대비된다. 물론 한번 실패하면 영원한 루저가 되는 환경에서는 선뜻 도전하기 어렵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투자받을 수 있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문화가 구축돼야 한다.

스탠퍼드대의 경우 컴퓨터공학이 인기인데 기술뿐만 아니라 철학·윤리·사회적 이슈에 관한 문제의식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최근 스탠퍼드대에 AI 연구를 집결한 ‘스탠퍼드 인스티튜트 포 휴먼-센터드(Stanford Institute for Human-Centered) AI’를 만들었는데 철학자와 컴퓨터공학자가 공동 대표가 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혁신에는 기술은 물론 인문학적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 대한 혁신전략을 조언한다면.

△한국은 외국인에게 배타적이어서 글로벌 인재 유치가 쉽지 않은데 실리콘밸리 등의 글로벌 인재와 깊은 교류를 해야 한다. 교육부가 대학 등록금을 10여년이나 묶어놓고 지원책을 내세워 자율성을 제약해서는 글로벌 기술전쟁에서 처지게 된다. 한국인들은 실리콘밸리에 오면 공통적으로 신기술에 관해 묻지 문화와 생태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매우 부족하다. 실리콘밸리의 힘은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이는 문화적 다양성이라고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베가 실리콘밸리 기업 리더들과 라운드테이블을 할 때 기술적인 측면을 계속 질문하자 기업인들은 거듭 문화를 강조하더라.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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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사회학사, 워싱턴대 사회학 석·박사인 그는 아이오와대 교수와 UCLA 교수를 거쳐 2001년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 겸 국제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한국학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2005년부터 APARC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앤드루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등 APARC 방문연구원 중에는 한미 정부에 영향력이 큰 인사가 많다. 신 소장은 역사사회학·정치사회학·국제정치학 전문가로 한미동맹, 동북아 역사문제, 남북관계 등 정책과제를 수행했고 20여권의 영문책과 다수 논문을 출간했다. 2006년부터 연 2회 한미정책포럼을 열고, 양국의 한반도 전문가를 펠로우로 초청해왔다. 2017년에 ‘슈퍼피셜코리아: 화려한 한국의 빈곤한 풍경’이라는 한국어 책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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