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가격은 폭등한 반면 거래량은 급감해 초과배출권을 확보해야 하는 제조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공장을 돌리려면 비싼 가격에라도 배출권을 사야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의 배출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시장에서는 유통 물량 자체가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사지도 팔지도 못하는 배출권은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켜 산업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26일 산업계에 따르면 이날 탄소배출권의 시장 가격은 톤당 2만6,50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이 열린 지난 2015년 평균 가격은 톤당 1만1,007원이었지만 2016년 1만7,179원, 2017년 2만879원, 지난해 2만2,127원으로 올랐다. 매년 전년 대비 106~156%씩 상승했다. 올 들어서도 톤당 4,000원 이상 올랐다.
문제는 거래량이 덩달아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격이 올라도 매물이 없는 상황이 이어지며 배출권 시장의 거래는 멈췄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날까지 21거래일 동안 거래량이 ‘0’이었던 날이 15거래일에 이른다. 한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 정책은 탄소배출량을 계속 줄이겠다는 기조여서 기업들의 탄소감축 부담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배출권이 남는다고 해도 시장에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탄소배출권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비싼 가격에라도 배출권을 구하고 싶지만 유통량이 부족해 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과징금을 내야 할 위기다. 산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친환경설비에 투자해 자체적으로 탄소를 감축하라고 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결국 배출권거래제도가 기업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켜 제품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탄소배출권거래제가 애초부터 잘못 채워진 단추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백광열 연세대·MIT 기후변화와 경제 프로젝트 공동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무지와 무능으로 우리는 기후금융 체제에 필요 이상의 엄청난 경제적 대가를 지불했다”고 강조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절벽]MB정부 녹색성장 신기루에 예고된 재앙
# 석유화학 업종 대기업인 A사는 합성수지 계열 생산품의 약 60%를 수출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중국 등 세계 여러 국가의 제품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품이다. 하지만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배출권 가격이 꾸준히 오르면서 관련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원가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제품 경쟁력이 있어 가격 인상이 가능한 제품에는 관련 비용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야에는 인건비를 줄이는 등 ‘제 살 깎아 먹기’로 버티고 있다”며 “가격을 올린 제품도 언제까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을 정해 배출허용량을 준 뒤 초과 배출량이 생길 경우 그만큼의 배출권을 거래시장에서 구입해 사용하도록 하는 배출권거래제를 지난 2015년부터 시행했다. 2007년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 기조를 내세우면서 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고 저탄소 정책을 추진한 결과다.
하지만 녹색성장을 명분으로 출발한 배출권거래 시장은 4년 만에 거래절벽에 부딪혔다. 전문가들은 예고된 결과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MB정부의 녹색성장은 해외 컨설팅 업체의 빈약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졌고 최대 성과라고 포장됐던 녹색기후기금의 송도 유치도 주요국가들이 발을 빼며 떠안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차원에서 그렇게 강조했던 2008년 교토의정서는 이미 휴지 조각이 돼버렸고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국가 단위의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뉴질랜드밖에 없다. 정부의 과도한 정책 욕심이 결국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온 셈이다.
탄소배출권 시장 가격은 2015년 1월12일 시장 개장 첫날 톤당 8,640원이던 데서 26일 현재 세 배 이상 뛴 2만6,500원을 기록했다. 연도별 평균 거래가격 또한 2015년 1만1,007원, 2016년 1만7,179원, 2017년 2만879원, 지난해 2만2,127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거래가격 급등은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가 단위 배출권거래 계획에 따라 향후 감축량에 대비해야 하는 기업들은 보유한 배출권 물량을 시장에 내놓지 않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도 참여 기업들은 대부분 철강·발전·석유화학 등 업종 특성상 탄소 배출이 많은 곳이다. 초과배출권은 3개년 단위인 정부 계획기간 내에서 이월할 수 있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이익을 내려면 공장을 돌려야 하는데 정부가 지시하는 감축량은 앞으로도 늘어날 게 뻔한 상황”이라며 “어느 기업이 무턱대고 배출권을 팔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최근 21거래일간 거래량이 ‘0’인 날은 15거래일이었고 거래가 있었던 날마저 대부분 시장외거래인 ‘협의매매’였다. 두 기업이 서로 지정해 장외에서 차례로 물량을 주고받는 형태여서 유의미한 거래물량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출권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우선 오른 가격에 배출권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다. 배출권을 구하지 못하면 과징금을 내야 한다. 과징금은 배출권 평균 시장가의 최대 3배다. 가령 50만톤을 초과 배출한 기업이 배출권을 구하지 못하면 약 133억원(50만×26일 시장가 2만6,500원, 가중평균 제외)이 부과된다. 과징금은 3년 단위 계획기간에 한번 부과되지만 기업들은 해마다 5월 말 초과 배출권을 구해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모자라면 다음해에 구입해 채워넣을 수 있지만 물량을 기약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친환경설비에 투자해 기업 자체적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지만 금방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닌데다 이마저도 비용상승 요인이 된다. 결국 배출권거래제가 제조기업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켜 제품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발전·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의 회사가 배출권거래제의 주요 참여기업인데 이들은 전방산업과 연계된 기초 제조기업들”이라며 “배출권 비용 부담이 연쇄적으로 제품 가격 인상과 국제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발전기업의 원가 부담이 전기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철강사의 부담이 자동차와 가전 등의 가격 인상으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정부에 보다 유연한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초기부터 너무 강한 감축량을 제시하면 부담이 크다”며 “배출권거래 시장도 기업들의 입장을 반영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토로했다.
기업 51% “탄소 허용배출량 형평에 안맞다”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들은 정부에 허용배출량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최근 환경부에서 발간한 제1차 계획기간 배출권거래제 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267개 응답업체의 77%가 제도에 불만족한다고 답변했으며 그 이유로 정책의 불확실성(60%)과 할당의 형평성 부족(51%)을 가장 많이 꼽았다.
형평성에서 잡음이 일고 있는 대표적인 예가 에너지 분야의 할당량 문제다. 정부는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서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으로 넘어가면서 같은 부문 내 업종은 같은 감축률을 적용하기로 했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산업 부문 내의 ‘산업단지(집단에너지)’ 업종은 2차 계획기간에서 17.1%의 탄소감축률을 지시받은 반면 같은 부문의 ‘산업 부문 일반’ 업종은 6.1%만 감축하면 된다. 산업단지 업종은 국가산업단지 내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업체다. 산업 부문 일반은 한 기업체가 자체 사업장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설비를 갖추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산업단지 업종은 “불공평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업종 내 한 기업 관계자는 “업종 특성상 다를 게 전혀 없는데, 불합리한 할당이라고 생각한다”며 “환경부에 이의신청을 했지만 진전이 없어 행정심판 신청서를 접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환 부문에서도 ‘발전에너지’ 업종은 25.9%를 줄여야 하지만 지역난방공사 등 ‘집단에너지(지역난방사업자)’ 업종은 6.1%의 감축률이 나왔다. 산업계 관계자는 “형평성에 대한 불만도 배출권거래제 안정성을 해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조속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