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칼럼] 브렉시트 복병, IRA(북아일랜드공화국군)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英, EU탈퇴땐 국경문제 다시 부상
'백스톱'으로 장벽 설치안하더라도
북아일랜드엔 EU기준 적용 모순
노딜 브렉시트 이후 대책 만들어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시한이 당초 오는 3월29일에서 짧게는 4월12일, 길게는 5월22일까지로 연기됐다. 만약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과의 재협의 방안에 대해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다음달 12일 대책 없이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한다.

영국은 6월 말까지 브렉시트 연기를 요구했으나 5월23~26일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 일정으로 EU가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브렉시트 일정 연기로 유럽의회에 영국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선출될 경우 EU의 브렉시트 처리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재실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고 메이 총리의 불신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들은 자신을 ‘아이리시(아일랜드인)’로 밝히고 조부모나 부모가 아일랜드에서 어렵게 살았던 시절을 언급하고는 한다. 영국에 대한 반감은 대를 이어 전달됐다. 올리버 크롬웰 장군이 아일랜드 가톨릭 농민들의 토지를 몰수한 적도 있고 대기근에 영국 지주들의 수탈과 기근으로 많은 아이리시가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대서양을 건너기도 했다. 한때 미국 이민자의 80%가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중년 이상의 성인들은 30여년 전 아일랜드공화국군(IRA) 폭탄 테러 뉴스를 들었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IRA는 영국으로부터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게릴라단체였다. 대부분의 뉴스는 IRA 소속 무장단체가 영국 시설이나 시민을 상대로 한 테러였다. 종교·인종·영토 문제로 1969년 내전이 발생했고 1998년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무려 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오늘날의 EU 체제가 형성되면서 북아일랜드 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됐다. EU 조약에 따라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은 국경장벽을 철거하고 남북 아일랜드 이동 및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게 되면서 IRA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고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안정시킬 수 있게 됐다.

브렉시트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을 다시 설치하고 출입국을 단속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경우 아일랜드는 경제적 손실과 더불어 정치적 불안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서 국경장벽을 복원하게 됨에 따라 과거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 이러한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영국의 메이 총리와 EU가 잠정적으로 합의한 방안이 ‘백스톱’이다. 만약 브렉시트가 제대로 안 돼 영국이 EU를 떠나더라도 기존의 EU 분담금(연간 15조원 규모)을 내야 하고 북아일랜드를 EU 관세동맹 체제로 남겨둠으로써 국경장벽을 만들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 경우 영국 상품이 북아일랜드로 유입되고 다시 아일랜드로 넘어가더라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게 된다. 아일랜드의 입장에서는 EU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품이 관세 부담 없이 무단으로 수입될 수 있고 영국은 자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에 대해 브렉시트로 탈퇴한 EU의 기준을 수용해야 하는 자가당착적 상황에 빠지게 돼 이게 무슨 브렉시트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EU 체제로 인해 해결할 수 있었던 IRA 문제를 EU 밖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국민투표로 브렉시트 결정 차체를 무효화하지 않고서는 노딜 브렉시트를 비켜 나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영국 국민은 EU의 가치를 금전적인 부담으로만 평가했지 돈으로 살 수 없는 지역 안보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유럽 통합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제안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당시 영국 지도부는 브렉시트가 부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정치적 도박을 했기에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년간 영국과 EU는 북아일랜드 해법을 고심했지만 합리적인 해법을 찾지 못했고 5월22일까지 검토해도 노딜은 불가피할 것이다. 제2의 국민투표가 조만간 결정되지 않으면 노딜 브렉시트를 기정사실화할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 노딜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의 통상관계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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