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한 장면.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한 장면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의 한 장면.
관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공연이 끝났을 때 배우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따라 울고 있는 관객들도 있었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에 관객들의 가슴도 먹먹해진 듯 했다. 난항을 겪다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서 되살아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얘기다.
이 뮤지컬은 소설가 김성종의 장편 대하소설이 원작이다. 1991년에는 MBC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당대 최고 스타였던 채시라·박상원·최재성 등이 출연해 평균 시청률 44%를 기록하는 등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위안부, 731부대, 제주 4.3사건 등 당시만 하더라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소재를 정면으로 다뤄 큰 충격을 줬다.
이 뮤지컬은 처음엔 원작의 명성과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에다 수십억원이 투자되는 탓에 대작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배우 캐스팅, 홍보영상 제작까지 끝난 상태에서 약속한 투자금을 받지 못하자 공연 자체가 아예 엎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결국 제작진은 최소한 소품과 영상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은 계약금만 받고 출연에 동의했다.
이런 탓에 무대는 의자와 철조망 정도의 소품을 배치해 휑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대신 제작진은 패션쇼의 런웨이처럼 긴 부대를 만든 뒤 무대 양옆에 320석의 객석(‘나비석’)을 배치하는 실험을 단행했다. 화려한 장치가 없는 ‘초미니멀리즘’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한 관객은 “배우들의 연기가 나비석으로 고스란히 전달돼 작품이 더욱 실감났다”고 말했다.
특히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는 관객들이 현대사의 비극에 휘말린 젊은 세 남녀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절절한 감동을 선사한다. MBC 드라마 최고의 명장면으로 여옥과 대치가 철조망 사이로 키스하는 장면은 소품이 철삿줄 몇 가닥이 전부이지만 애절하고도 가슴 아프기만 하다.
마치 관객들이 비극적인 역사 속에 내던져진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또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세 남녀의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이념이란 무엇인지, 진영논리 속에 인간의 삶도 있는 것인지 끊임 없이 질문을 하게 한다. 한 관객은 “온전히 배우들만의 에너지로 무대가 가득 채워진 것 같다”며 “극 전반에 흐르는 웅장하고 애절한 선율의 음악 역시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 말했다.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 강점기인 1943년 겨울부터 한국전쟁 직후 겨울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여옥, 대치, 하림 등 세 남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았다. 여옥은 영문도 모른 채 난징 위안소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조선인 학도병 대치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임신한 여옥과 대치는 탈출 과정에서 헤어지고 사이판에 흘러 들어간 여옥은 위생병 하림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는다. 이후에도 세 남녀는 비극적인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여옥 역은 문혜원·김지현, 대치 역에는 김수용·박민성·김보현, 하림 역에는 테이·이경수가 각각 캐스팅돼 열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뮤지컬계의 톱 스타는 아니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재평가 받고 있다. 4월14일까지 디큐브아트센터.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수키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