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인수합병(M&A)으로 기록될 게임업체 넥슨의 본입찰이 임박했다. 국내 게임산업의 공룡인 넥슨은 매각 추정가치만도 최소 10조원, 최대 15조원으로 예상되는 초대형 매물이다. 새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게임업계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 게임업계에서도 높은 관심을 표명하는 이유다. 넥슨 매각은 지난달 예비입찰이 끝나 주관사가 적격인수후보(쇼트리스트)를 정해 본입찰을 앞둔 상태다. 인수후보는 카카오와 MBK파트너스, 텐센트, 베인캐피털과 해외 사모펀드(PEF) 등 5곳으로 정해졌다. MBK컨소시엄에는 넷마블이 참여하고 있다. 본입찰이 다음달 중순께로 다가오면서 넥슨을 실사 중인 인수후보들의 수 싸움도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왜 지금 파나=넥슨 지배구조는 ‘NXC(지주회사)→넥슨 일본법인→넥슨코리아’로 이뤄져 있다. 이 중 NXC의 지분 98.64%를 창업주인 김정주 회장과 부인 등이 가지고 있다. NXC는 넥슨 일본법인의 최대주주사여서 NXC를 소유한 김 회장은 절대적인 존재다. 지배력이 워낙 견고해 적대적인 M&A 등에 대한 우려가 거의 없다. 무엇보다 넥슨은 지난해에도 매출 2,500억엔, 영업이익 1,000억엔이 넘는 실적을 올릴 정도로 탄탄한 기업이다. 게임 개발력과 퍼블리싱(유통) 등 모든 부문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한다. 올해 상반기 국내외에서 출시하는 게임만 ‘크레이지 아케이드 BnB M’ ‘바람의 나라: 연’ 등 14개에 달할 정도다. 그런데 올해 초 갑자기 매각을 공식화했다.
왜 지금일까. 현재 오르내리는 분석은 우리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와 김경준 전 검사장 스캔들로 인한 피로감 등이 겹쳤다는 것이다. 가능한 해석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더 있는 것 같다. 매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그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시진핑 국가주석의 뜻에 따라 게임산업을 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 주석이 지난해 8월28일 청소년 근시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청소년들의 시력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시하자 이틀 뒤 중국 당국은 아동과 청소년의 시력 보호와 게임 중독 예방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온라인게임 규제를 도입했다. 신작 게임 출시 절차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이런 중국 시장의 분위기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는 넥슨으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넥슨은 지난해 2,537억엔의 매출 가운데 52.4%(1,330억엔)를 중국에서 거뒀다. 이는 한국 매출(738억엔)의 두 배에 달한다. 넥슨의 미래가 김 회장의 의지와는 별개로 중국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시장 개척도 여의치 않은데다 최대 시장의 분위기마저 어두우니 기업가치가 최고조에 오른 지금이 최적의 매각 타이밍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일본 증시에 상장돼 있는 넥슨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조2,636억엔에 이른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중국의 게임산업 통제 강화 등 국내외 게임업계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지금이 넥슨 매각의 적기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거액을 베팅하는 이유=본입찰이 다가오면서 인수전 열기도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JP모건과 크레디트스위스(CS), BNP파리바 등 글로벌 투자은행(IB) 실무진들이 잇달아 방문해 국내 금융사들과 접촉했다고 한다. 인수금융을 함께 주선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넥슨의 덩치가 워낙 커 인수를 위해서는 자금조달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국내외 업체들은 왜 넥슨에 눈독을 들이는 것일까. 인수희망자들의 노림수는 다양하다.
넷마블은 모바일게임에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PC게임으로 다변화하려는 목적이다. 넷마블의 대표 게임은 ‘블레이드&소울 레볼루션’ ‘리니지2 레볼루션’ ‘모두의 마블’ 등 모바일 위주다. 이에 비해 넥슨의 주력 게임은 대부분 PC게임이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넥슨이 보유한 게임 지식재산권(IP)과 개발 역량을 확보하면 상승 효과도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영식 넷마블 대표도 “넥슨이 보유하고 있는 게임 IP와 넷마블의 모바일 퍼블리싱 역량이 결합하면 높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카카오는 게임사업 강화라는 측면에서 그룹 전체에 도움이 되고 자회사인 카카오게임즈의 기업공개(IPO)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넥슨을 인수하면 수익성과 게임 개발 역량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어 카카오게임즈 상장 때 기업가치가 크게 불어날 수 있다. PEF들은 NXC를 인수한 뒤 일본에 상장된 넥슨을 국내 증시나 미국 나스닥 등으로 이전 상장시켜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넥슨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배 미만이다. 국내 증시에서는 게임업체가 30배가량에 거래되고 있어 이전 상장만으로도 상당한 차익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의 움직임은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무엇보다 인수후보 가운데 자금동원 능력이 최고인데다 넥슨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넷마블의 3대주주(17.7%)이자 카카오의 2대주주(6.7%)여서 국내 게임업계 사정에도 밝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어인 넥슨까지 합칠 경우 한국 시장 장악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
◇누가 승자일까=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인수후보로 꼽히는 곳은 넷마블-MBK파트너스다. 국내 게임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넷마블이나 카카오의 인수가 긍정적이다. 넥슨의 게임 IP와 개발력, 브랜드 가치의 해외유출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매각 규모가 만만찮다는 점에서 현금 여력이 큰 텐센트가 다크호스다. 만약 텐센트로 넘어가면 국내 주요 게임 IP가 유출되고 중국자본으로의 종속이 심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변수가 많아 예측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근 실적 악화 등으로 인해 텐센트가 본입찰에 불참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넷마블 등의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매각이 무산되거나 부분매각으로 축소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어떤 결말이 나든 넥슨의 매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넥슨을 둘러싼 환경들이 넥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 게임사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넥슨 매각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게임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업종의 하나이자 잠재가치 또한 높은 산업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산업이 위축되거나 외국에 종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넥슨 매각을 단순히 한 기업의 M&A건으로만 볼 게 아니라 우리 게임산업 전반에 드리워진 문제에 대해 정부·업계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sh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