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전 신문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의 기업은행 방문 사진을 보면 대통령 양옆에 젊은 여자 행원이 앉아 있다. 기업 대출·여신 심사 직원이라고 한다. 청와대와 기업은행, 누구의 아이디어였든 이 한 장의 사진은 대한민국 금융의 현주소를 오롯이 보여준다.
은행은 보수적이다.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가 뚜렷하다. 문 대통령의 사진은 금융권의 보수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이런 곳에서 문 대통령은 “과거의 금융 관행에서 벗어나 미래 혁신기술을 선도하는 혁신금융을 추진한다”고 했다. 변하지 않는 곳에서 변화를 외친 꼴이다.
보수가 적폐라는 얘기는 아니다. 금융권의 보수성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출해준 돈을 받지 못하면 고객에게 예금을 내주지 못한다. 부실기업은 문을 닫으면 끝이지만 은행은 국가 경제와 지급결제시스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외환위기 후 금융권에 공적자금 168조7,000억원을 쏟아부은 까닭이다. 보신주의를 깨기 위해서는 뱅커의 논리와 현장의 어려움을 꼼꼼히 들을 필요가 있다. 제대로 알아야 바꿀 것 아닌가.
이런 얘기는 20년가량 여신제도를 만들어온 여신기획부 부장과 팀장에게서 나온다.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 금융을 송두리째 바꾸고 싶었다면 젊은 여행원이 아닌 은행권 보수의 핵심인 이들과 밤샘토론을 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중기대출의 어려움과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 감독 당국의 문제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금융 빅뱅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었을지도 모른다(금리와 수수료 개입부터 없애는 것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혁신금융은 절대 이벤트로 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일회성 방문이 아쉬운 이유다.
‘우물 안 개구리’인 대한민국 금융은 반드시 변해야 한다. 하지만 겉핥기식 접근으로는 어렵다. 지금의 혁신금융은 박근혜 정부의 기술금융과 다를 게 없다. 기술금융 대출잔액만 지난 2017년 말 현재 81조6,000억원이다. 대출을 100조원으로 늘린들 근본은 그대로다. 이대로라면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한국 금융의 혁신을 대서특필하는 날은 오지 않는다. 적어도 이 정부에서는 그렇다.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