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030200) 안팎에 불고 있는 바람이 잦아들지 못하고 있다. 임박한 세계 최초 5세대(5G) 통신 상용화 얘기보다는 채용비리나 고액 로비, 검찰 수사 같은 얼룩뿐이다. 이대로라면 임기 1년을 남겨둔 황창규 회장도 ‘연임 뒤 불명예 퇴진’이라는 민영화 KT 수장 ‘공식’을 따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T 흑역사’의 근저에는 주인 없는 취약한 지배구조가 자리한다. 정부가 앉힌 낙하산 수장이 권력에 보은하는 행태가 반복한 것이다. 황 회장이 이를 끊자며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섰지만, 최근 입지가 흔들리면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겠냐는 비관이 고개를 들고 있다.
2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KT는 오는 29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김인회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을 신임 사내이사에 올린다. 업계에서는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는 구현모 커스터머&미디어 부문장(사장)과 더불어 김 사장도 사내이사 ‘계급장’을 달며 차기 회장의 내부 발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구도는 퇴임 1년을 남겨둔 황 회장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황 회장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정관을 바꿔 CEO 자격에 ‘경영경험’을 ‘기업경영경험’으로 바꿔 정치인 낙하산을 막고, 내부출신 등용문을 넓히고자 CEO가 사내이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복수대표이사제’를 도입했다. 지난 17일에도 “내부에서도 CEO 발탁이 가능하도록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후임 회장 결정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사회를 통해 진행될 것”이라며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강조했다.
그가 지배구조 개편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외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KT의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2002년 민영화 이후 KT는 끊임 없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다. 국민연금(지분율 12.19%)과 외국계 투자기관, 일반 소액주주로 특정 주인이 없어 사실상 정부 통제권에 들어있다. 정권이 바뀌면 전리품 취급하듯 KT를 접수하고, 그렇게 CEO 자리에 오르면 해바라기처럼 권력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보니 특혜 채용 같은 요구에 약한 구조인 셈이다. 전임 남중수, 이석채 CEO가 줄줄이 연임 후 검찰 수사로 두 번째 임기를 못 채운 것도 이 틀과 무관치 않았다.
문제는 후계 구도를 마무리하기 전 황 회장 스스로의 위치가 위태로워졌다는 점이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KT전국민주동지회 등이 황 회장을 업무상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조사2부에 배당하며 정식 수사를 개시했다. 앞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T가 2014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정치권 인사 등 14명을 자사 경영고문으로 위촉했고 자문료 총액은 약 20억원에 이른다고 폭로했다. 황 회장은 앞서 법인자금으로 상품권을 산 뒤 되팔아 현금을 만드는 ‘상품권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 후원금을 낸 혐의로도 수사를 받는 중이다. 이들 사건의 칼 끝이 황 회장을 겨눌 수 있는 만큼 황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이럴 경우 황 회장과 같은 경영진으로 뛴 유력 후임 후보군들도 낙마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번 주총에서 친여권성향 유희열 부산대 석좌교수가 사외이사에 오르며 기존 이강철, 김대유 이사와 더불어 참여정부 관련 인사가 3명으로 는 만큼 차기 회장에 정권 입김이 세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학 교수는 “KT가 외풍에서 벗어나려면 경영을 견제하고 감시할 만한 이사진을 구성하고 주주들도 보다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정부 역시 손에 쥐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