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의 금융권 여신이 4,000억원에 불과한 반면 자산유동화증권(ABS)·회사채·금융리스 등 비금융권 부채가 3조원에 달해 채권단의 움직임에 제약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산은은 박 회장의 용퇴 소식이 전해진 28일 오후 공식 입장문을 내고 “박 회장이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용퇴하기로 결정한 내용을 확인했다”며 “(산은의 협조와 관련해서는) 먼저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 신뢰 회복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날 저녁 이동걸 산은 회장이 박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금호 측에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방안을 마련해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산은은 현재 진행 중인 실사 결과와 금호 측에서 제출할 이행계획을 바탕으로 다각적인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재무구조개선약정(MOU)을 다시 체결할 방침이다.
산은이 박 회장의 SOS에 대주주와 회사 측의 신뢰 회복 노력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은 그만큼 채권단 입장에서도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쓸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는 분석이다. 산은 등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에 빌려준 금액이 적다 보니 기존 여신의 만기연장이나 출자전환 등과 같은 전통적 방식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보면 아시아나항공이 국내 은행으로부터 빌린 장단기 차입금은 4,076억원에 불과하다. 1년 이내 단기차입금(수은·SC제일·농협은행)이 961억원이며 1년 이상 장기차입금(산은·수은·SC제일·농협·우리은행)은 3,115억원이다.
반면 이번 회계 쇼크로 조기상환 우려가 제기됐던 ABS 발행 잔액은 1조2,474억원, 항공기 금융리스 부채는 1조4,154억원으로 합치면 2조 6,628억원에 이른다. 올해 4월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600억원을 포함해 오는 2023년까지 순차로 상환해야 할 회사채까지 더하면 비금융권에서 조달한 부채만 3조원이 넘는다. 채권은행인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이 빌려준 돈의 8배다.
시장성 차입이 많은 기업은 채권단 입장에서 피하고 싶은 구조조정 대상이다. 특히 산은은 2013년 STX조선 구조조정 당시에도 일반회사채 투자자들의 헤어컷(채권 가격·금리 조정) 문제로 진땀을 뺀 전례가 있다.
문제는 경영권에서 손을 떼며 승부수를 던진 박 회장에게 자산매각이나 사재출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박 회장은 사재를 포함해 대부분의 자산을 출연했다. 더욱이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4월 맺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따라 △CJ대한통운 지분 매각(1,566억원) △금호 사옥의 토지 및 건물 매각(4,180억원) △전환사채 1,000억원 발행 조치 등을 이행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박 회장의 용퇴 선언 이후 아시아나항공이 이날 주식시장에서 상승 마감한 것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이라며 “시장이 빠르게 안정된다면 채권단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다시 체결하면서 이번 사태로 무산된 영구채 발행 등 자본 확충이나 신규 여신 제공 같은 조치를 담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