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우리·수은·SC제일은행·현대투자파트너스제일호유한회사 등은 지난해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과 그 계열사에 장단기로 돈을 빌려주면서 총 1조1,967억원 규모의 담보권을 설정했다. 은행별로 보면 산은·우리은행이 지분증권과 토지·건물·항공기 등에 7,867억원, 수은은 재고자산에 1,330억원, SC제일은행 등은 토지·건물에 1,710억원의 담보를 설정했다. 은행권이 지난해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에 빌려준 금액은 4,076억원으로 여신액 대비 담보 규모를 2배 이상 높게 설정한 것이다. 여기에 아시아나항공이 투자전문회사인 현대투자에 담보로 제공한 계열사 보유지분(금호티앤아이·금호리조트·속리산고속)까지 더하면 총 담보자산액은 1조2,000억원까지 늘어난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산은 주도로 아시아나항공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을 당시 회사가 내놓은 자구안에 대해 은행들 간에 이견이 있었다”며 “보통 여신액 대비 1.2배 수준으로 설정하는 담보액이 3배까지 늘어난 것은 그에 따른 결과”라고 귀띔했다.
시장에서는 국내 은행들이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우려해 평소 대비 담보를 많이 설정했던 것이 교착상태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성 차입 비중이 높아 채권단 주도의 경영정상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각 은행이 담보설정 비율을 낮추는 데 동의하면 신규 여신 없이도 아시아항공이 유동성을 확보할 길을 열어줄 수 있어서다. 토지·건물·부동산 등의 담보권을 일부 풀면 그룹 측이 추가 자산매각에 나설 수 있고 매각으로 유입된 돈은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채권단 은행들 간의 담보설정 기준과 이해관계가 제각각이어서 이 방안이 실현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은 관계자는 “아시아나 보유자산에 은행들이 여신 규모 대비 담보권을 많이 설정해놓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채권단 주도로 자구안을 짜는 게 아니라 그룹이 먼저 투자자들의 불안을 잠재울 만한 성의 있는 자구안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직면한 현 위기상황은 지난 21일 회계법인으로부터 ‘한정’ 감사의견을 받은 아시아나항공의 회계 쇼크에서 촉발됐다. 사태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진원지인 아시아항공의 유동성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그동안 자산유동화증권(ABS)과 기업어음(CP)·회사채 등 시장성 차입을 늘려온 탓에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의 움직임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은행권의 담보설정 비율 조정은 이럴 때 쓸 수 있는 히든카드다.
일단 그룹 입장에서는 당장 오는 4월부터 만기 도래하는 시장성 차입을 상환할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다. 아시아나항공은 4월25일까지 600억원의 회사채를 갚아야 한다. 이어 6월 400억원, 11월 834억원의 ABS 만기가 도래한다. 물론 회사채든 ABS 등 시장에서 차환발행에 성공하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면 복수의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BBB- 이상을 받아야 하는데 회계 쇼크로 아시아나의 신용등급은 하향조정 대상에 오른 상태라 짧은 시간 안에 회복이 어렵다. 결국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전까지는 회사의 책임 있는 자구노력과 채권단의 금융지원이 필수인 상황이다. 채권단이 담보설정 비율을 조정해 회사가 토지·건물, 지분 등을 매각할 길을 열어주는 방안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은행 입장에서도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기존 여신을 줄여왔기 때문에 신규 대출보다는 이 같은 방식이 나을 수 있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그룹 측에 제출을 요구한 자구안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비용 축소를 위한 인력감축 같은 방안도 거론된다.
은행들은 토지나 건물·주식 등 처분 가능한 자산을 담보로 잡아 기존 여신을 회수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했다. 은행 실무진 사이에서는 담보 비율을 조정했다가 나중에 감사를 받고 문책을 당할 바에는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채권단 간의 의견조율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과거에 만기 도래하는 금융권 여신을 갚지 못해 채권단 주도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기업들과 현재의 아시아나항공 상황은 다르다”면서도 “결국 그룹 오너가 퇴진한 후 회사 차원에서 나올 자구안이 시장의 불안을 얼마나 해소하느냐에 따라 경영정상화의 향배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우·이지윤기자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