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정치]이주열 "화폐단위변경 논의할 때" 靑은 "전혀 검토 안해"

이주열 한은 총재 국회 답변에 靑 선 그어
지하경제 양성화로 수십조 세금 걷히는 효과...복지재원 활용 가능
그러나 물가 급등 단점...겨우 잠잠한 부동산 불쏘시개 우려


이번 주 국회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5일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한다”고 말한 것이죠. 리디노미네이션은 예컨대 한 잔에 4,000원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값이 400원이 되는 것으로, ‘화폐 개혁’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습니다. 이 총재는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그러나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따르기 때문에 논의를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선 긋는 靑

하지만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총재도 그냥 하신 말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워낙 파장이 크고 정치적인 영향도 불가피해 현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꺼내는 게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총재가 ‘국회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공론화 해보는 게 어떠냐’는 이 의원에 제안에 동의하며 논의 주체가 ‘정치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청와대가 나설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도 이를 공론화할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5일 오전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 출석, 답변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찬성론자 “지하경제 양성화에 수십조 세금 거둘 수 있어”


그렇다면 리디노미네이션 찬성론자들은 왜 이를 주장할까요. 무엇보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들 수 있습니다. 화폐단위가 바뀌면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지폐는 물론 동전도 다 바꿔야 하죠. 당연히 장롱 속에 숨은 돈들이 햇빛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그동안 숨겨져 있던 소득을 파악할 수 있고 이는 세금 수입 기반을 넓히는 효과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각종 복지 재원으로 돈 쓸 일 많은 이번 정부 입장에서는 이만큼 좋은 세원은 없을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지하경제 규모가 30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고 여기에 평균 세율 10%만 때려도 30조원의 세금이 걷힐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올해 0~5세 아동에게 주는 아동수당 예산이 2조 1,600억원이죠. 이의 15배가 넘는 세금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연합뉴스

내수를 부양하는 효과도 볼 수 있습니다. 화폐단위 변경으로 길거리 ATM 기계부터 각종 가게의 메뉴판 교체 등 제반시설 변경 자체만으로 큰 내수진작 효과가 있습니다. 현재 수출과 투자, 소비 등 주요지표가 안 좋은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난 2004년 김효석 당시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보면 화폐단위 변경으로 들어갈 총예산으로 2조 6,700억원을 잡았습니다. 전산 수정 비용 1조 3,500억원, 화페 제조에 8,200억원, ATM기 교체에 4,400억원 등입니다. 15년 전의 추산이니 지금은 더 많은 예산이 들고 이에 따른 경제 파급 효과도 많을 것입니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4,000원이던 커피 값이 400원이 되면 심리적으로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마음도 가벼워질 수 있고 이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론자 “겨우 잠잠한 부동산 불쏘시개 될 것”

하지만 물가 상승이라는 단점이 워낙 강력합니다. 오늘 10억짜리 집이 화폐단위 변경으로 내일 1억이 되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집을 사는데 부담이 덜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이 리디노미네이션은 물가가 안정됐을 때 해야 하고 지금같이 겨우 부동산 시장이 잠잠할 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정부로서도 이 점이 가장 두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의 집값 폭등이 멈춘 상황인데 굳이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집값 불쏘시개를 들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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