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과 증기선, 어느 배가 빠를까. 질문 하나 더. 스크루와 외륜을 각기 장착한 선박이 속도를 겨룬다면 승자는? 역시 어렵지 않은 문제다. 다만 21세기의 경험을 지우고 19세기로 돌아간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로버트 풀턴의 증기선이 등장(1807년)한 후에도 범선우위론은 생명을 이어나갔다. 1852년 건조된 미국 범선 ‘바다의 지배자’호는 호주산 양모를 싣고 바람과 조류를 잘 만나 순간 속도 시속 22노트(40.7㎞)를 낸 적도 있다. 영국은 이 배를 따라잡겠다며 1869년 ‘범선의 끝판왕’이라는 ‘커티삭’호를 건조했다. 독일이 1902년 진수한 147m, 8,000톤의 거대한 강철 범선 ‘프로이센’호는 바람에 힘입어 17노트로 달렸다.
화물의 품질을 유지하려고 증기선을 기피하는 화주(貨主)도 없지 않았다. 19세기 최대의 교역품인 면화와 양모, 차(茶)와 담배를 증기선에 실으면 석탄 때문에 적재 공간이 적어지고 화물에도 석탄 냄새가 밴다는 선입견 탓이다. 여객선은 경우가 달랐다. 황금 노선인 대서양 정기 여객 항로에 일정한 속도를 낼 수 있는 증기외륜선이 1840년대 중반 이후 주류로 떠올랐다. 선박의 기술 발전을 선도해온 군함은 여전히 증기기관 장착을 꺼렸다. 단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첫째, 군함의 옆구리에 거대한 증기외륜을 장착하려니 대포 탑재 문수가 현저히 적어졌다. 둘째, 외륜 자체가 표적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우편함이나 고속수송함 용도로 국한해 증기외륜선을 도입하면서도 대형 전열함만큼은 범선을 고집하던 각국 해군은 1840년대 중반 이후 생각을 바꿨다. 신발명품인 스크루 덕분이다. 스크루의 전면 채택 여부를 고민하던 영국 해군은 1845년 4월3일, 템스강 앞바다에서 실험에 나섰다. 대상은 1839년 건조된 외륜선 알렉토(876톤)함과 1843년 진수한 스크루선 래틀러(867톤)함. 알렉토급의 선체에 외륜 대신 스크루를 장착한 래틀러는 모든 항목에서 이란성쌍둥이 언니 격인 알렉토를 앞섰다.
결정적으로 함미끼리 묶은 후 반대 방향을 향해 최대 속력으로 달린 결과 래틀러가 알렉토를 끌고 다녔다. 해군은 이를 반겼다. 측면 대포 장착에 지장이 없는 래틀러를 내심 지지했으니까. 더욱이 외륜보다 스크루가 건조비용까지 낮았다. 래틀러는 이후에도 신형 스크루가 나올 때마다 무수한 실험을 거쳤다. 건조비보다 테스트 비용이 더 들었다. 혁신은 수사학이 아니라 창의력과 실험·비용이 합쳐진 결과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