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증권 관계자들은 뉴욕 타임스스퀘어호텔의 중순위 대출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판매하면서 예상보다 뜨거운 고객들의 반응에 놀랐다. 만기 2년 6개월에 연 수익률 7% 중반을 목표로 하는 이 펀드에 대한 PB들의 판매 권유가 시작되자 2주 만에 당초 모집액 370억원을 훌쩍 넘어선 800억원이 몰렸다. 최대 49명밖에 가입이 안 되는 사모펀드의 규정상 투자금액 순으로 가입자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7억원 이상 고객만 가입이 가능했다. KB증권의 한 PB는 “5억원을 들고 온 자산가도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괜찮다 싶은 사모펀드의 경우 경쟁이 치열해 법상 최소 투자금인 1억원으로는 가입이 어림도 없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이 확실한 방향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서도 사모펀드의 인기가 뜨겁다. 거액자산가들 사이에서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중위험·중수익을 누릴 수 있는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증권사들도 운용사나 증권사 투자은행(IB) 부서와 손잡고 다양한 사모펀드 상품을 내놓으며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4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1·4분기 공모펀드 자금 유입액은 8조3,337억원인 데 반해 사모펀드는 16조2,163억원이 유입됐다. 사모펀드 투자액이 두 배인 셈이다. 특히 2월과 3월에는 공모펀드에서 각각 1조5,873억원과 7조6,676억원이 빠져나간 데 반해 사모펀드에는 같은 기간 각각 6조6,497억원과 8조1,345억원이 유입됐다. 순자산액 기준으로 사모펀드는 3일 현재 353조원, 공모펀드는 247조원이다.
대형 증권사의 창구에서 팔리는 사모펀드는 공모를 크게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A증권사의 경우 연초부터 3월 말까지 1조1,800억원의 사모펀드를 자산가와 일반 법인에 판매했다. 이 중 5,500억원이 레포(환매조건부채권)펀드로 주로 일반 기업들이 대기자금을 굴리는 펀드임을 감안하더라도 나머지 6,000억원 이상이 다양한 사모 상품에 몰렸다. 반면 공모펀드 판매액은 1,300억원선에 그쳤다. B증권사도 1·4분기에 리테일 고객을 대상으로 3,000억원의 사모펀드를 팔았으나 같은 기간 공모펀드 판매는 400억~500억원에 그쳤다.
사모 상품이 인기를 끄는 것은 투자자들이 지난 몇 년간 공모펀드 수익률에 실망한데다 정부의 사모펀드 활성화 방안 덕에 운용사들이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이나 채권 시장의 방향성과는 상관없이 롱쇼트를 통한 절대수익 추구형 펀드나 전환사채(CB), 후순위채권 등에 투자하는 메자닌 펀드가 대표적이다. 핵심지역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만기 2~3년인 부동산대출채권 펀드는 특히 인기가 높다. 박병철 NH투자증권 펀드솔루션부 팀장은 “전통적인 투자 방식으로 운용되는 펀드에 대한 투자 열기가 식었다. 자산가들은 이제 금융시장 등락에 상관없이 예금 금리 이상의 수익을 내는 사모펀드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관순 미래에셋대우 상품솔루션팀 이사는 “자산가들은 기대 수익률 연 4~5%선, 높아 봤자 6~8%선에서 꾸준한 수익을 내는 사모 상품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수익률이 좋은 운용사에서 펀드를 내놓거나 상품성이 뛰어난 펀드가 나오면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대표적인 사례가 씨앗자산운용의 사모펀드다. 이 운용사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대표 매니저였던 박현준씨가 설립했으며 지난해 말 부인인 신영자산운용의 대표 매니저인 박인희 본부장이 합류하면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하반기 하락장에서도 양호한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판매사들이 이 운용사의 새 펀드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연초에는 최소 가입액 10억원 이상 고객만을 대상으로 팔다가 최근 미래에셋대우와 삼성증권 등에서 가입 문턱을 5억원으로 낮춰(?) 펀드를 출시했다. KB증권이 최근 판매한 무역금융 채권에 투자하는 신탁상품도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2억원 이상 가입 고객에게만 판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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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