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산불 나도 시민 생명보다 '오늘밤 김제동'이 중요하냐"

재난주관방송사 KBS 등 지상파 재난 보도 부실
KBS 노조 "'시청료 내놔라' 등 시청자 질책" 내부 성토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사진제공=KBS

지난 4일 밤 11시 46분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지고 있다. /고성=연합뉴스

5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의 한 폐차장이 전날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해 모두 타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속초=오승현기자

지난밤 산불이 동해안을 삼켜버릴 정도로 국가재난 사태가 벌어졌지만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를 비롯한 지상파 보도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KBS 내부에서도 시사교양프로그램인 ‘오늘밤 김제동’ 방송 집착하느라 재난 보도가 늦어졌다는 성토가 나왔다.

전날 강원 고성·속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오후 7시 17분 시작해 오후 9시 이후에는 속초 시내까지 위협하면서 주민 대피령이 확산했다. 밤 10시께에는 소방청이 전국에 소방차 출동을 지시하고 이낙연 국무총리의 긴급지시도 떨어졌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인데도 지상파 3사는 산불이 확산된 지 한참 뒤늦게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 산림청이 산불 재난 국가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을 때도 지상파들은 드라마와 예능, 시사 프로그램 편성을 지속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보도 전문 채널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보를 접해야만 했다.

KBS는 재난주관방송사라는 타이틀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KBS 뉴스 9’에서 3차례 현지와 연결 방송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특보는 밤 10시 53분에야 시작했다. 게다가 첫 특보는 겨우 11시 5분까지 10여 분 이어졌고, 이후에는 정규 방송 ‘오늘밤 김제동’이 방송됐다. ‘오늘밤 김제동’은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는데도 20분간 산불과는 상관없는 4·3보궐선거 등에 대한 이야기만 이어갔다. 그리고 11시 25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특보 체제로 전환했다. 이미 청와대에서 위기관리센터 긴급회의를 준비하고, 사망자마저 나왔을 때였다.


게다가 현지 주민과 전화 연결을 하거나 이미 다 알려진 화재 원인·피해 상황만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등 특보 내용 자체도 크게 부실했다는 지적이 많다. SNS에서는 실시간으로 산불 상황이 전파되며 국민들이 공포와 우려에 휩싸였지만 대피소 정보나 대피 요령, 추가 피해 방지 등 현지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KBS는 시민 생명보다 ‘오늘밤 김제동’이 중요하느냐”고 비판했다. 노조는 “‘어디서 재난방송사라고 하지 말고 수신료 내놔라’ 등 KBS를 향한 피해 주민과 시청자들의 질책이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쏟아졌다”며 “세월호 참사의 초기 대응과 닮은 이 처참한 현실을 만든 책임자는 어디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 성향의 KBS공영노조는 성명을 통해 “‘오늘밤 김제동’을 편성하면서 폐지해 버린 밤 11시 ‘뉴스라인’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더 신속하게 대응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KBS는 재난 관련 정보에 더 접근성이 낮을 수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수어 통역도 사고 다음 날인 5일 오전부터야 제공됐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페이스북에 “재난 속보에 수어 통역을 지원하라. 장애인도 재난 속보를 듣고 안전해질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KBS는 “KBS는 재난방송 매뉴얼대로 특보 체제를 갖추고, 피해 내용과 규모, 확산 속도 등에 따라 시간대별로 대응을 조정, 확대했다”고 해명했다. KBS는 “‘오늘밤 김제동’은 생방송이어서 중간에 보도본부를 연결해 속보, 특보를 연결할 수 있도록 대비해달라는 보도본부 요청에 따라 오프닝 멘트부터 산불을 전했다”라며 “이후 연결에 대비해 시스템과 스태프가 모두 준비하다가 방송 중 보도본부가 현장 상황 악화에 특보로 이어갈 것을 결정하면서 20분 만에 방송 중단하고 특보를 재개했다”라고 설명했다.

재난 보도가 부실하기는 MBC와 SBS도 마찬가지였다. MBC는 밤 11시 드라마 ‘더 뱅커’가 끝난 후에야 예능 ‘킬빌’을 결방하고 특보 체제에 돌입했다. SBS는 예능 ‘가로채널’을 방송하다가 밤 11시 52분부터 관련 뉴스를 내보냈다. 이때는 이미 JTBC 같은 종합편성채널도 예능을 결방하고 특보를 시작할 때였다. 지상파 3사는 뒤늦게 특보 경쟁에 뛰어들면서 5일 오전 아침드라마, 시사교양 프로그램 등을 일제히 결방하고 뉴스를 전달했지만 한참 늦은 뒤였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