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부진의 나비효과…삼성과 TSMC 파고든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애증의 관계다. 스마트폰에서는 세계 1위를 놓고 두고 경쟁하는 강력한 라이벌이다. 하지만 삼성은 애플에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를 납품하고 있고, 메모리 칩도 공급한다. 그래서 애플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삼성은 흔히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를 아들로 둔 어머니에 비유된다. 한쪽이 문제가 생겨도 다른 한 쪽은 괜찮다. 가령 아이폰이 안 팔리면 메모리와 디스플레이는 실적 부진을 감수해야 하지만 스마트폰 사업은 득을 본다. 그래서 삼성이 애플보다 기업 가치가 더 낫다는 평가를 하는 IT 전문가들이 많다. 그만큼 수직 계열화를 통해 부품을 자체 조달하고 기술을 선도할 S급 인재도 확보한 것은 강력한 경쟁력이다.

그런데 최근 애플의 부진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에도 변화를 유인하고 있다. 애플의 AP 칩은 대만 업체 TSMC가 독점 공급한다. 아이폰의 경쟁폰인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에 들어가는 ‘모바일 AP 엑시노스’는 삼성의 파운드리 사업부가 납품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아이폰이 흔들리면 웃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삼성의 파운드리 사업부다.


아이폰의 부진은 중국 시장에서 판매 급감 탓이 크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반감에다, 중국인 특유의 자국 브랜드 선호, 여기에 결정적으로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의 기술력이 최정상 레벨까지 왔다. 삼성·LG는 “스마트폰만 놓고 보면 중국의 기술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덤덤히 말할 정도가 됐다. 이는 아이폰의 중국 시장 부진으로 연결될 소지가 크다. 실제 애플은 지난해 10∼12월 중국에서 전년 동기보다 27% 빠진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 1·4분기도 실적 전망치를 내렸다. 애플의 중국 시장 점유율 하락세 역시 뚜렷하다. 2017년 4·4분기 14.6%였던 애플의 점유율은 1년 뒤인 지난해 4·4분기 11.5%까지 떨어졌다.

업체별 순위도 4위까지 내려왔다. 중국업체의 기술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면서 애플의 중국 내 팬덤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중국 시장 스마트폰 점유율이 1% 아래로 빠진 삼성의 경우 오히려 ‘갤럭시10 효과’로 점유율을 올리는 상황이다. 확실히 애플이 위기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지점에서 파운드리 절대 강자 TSMC와 삼성의 격돌이 예상된다. TSMC는 애플의 AP칩뿐 아니라 화웨이·샤오미 등의 중국 업체에도 AP칩을 납품하고 있다. 사실 최신폰에 들어가는 AP 칩은 10㎚ 이하 공정으로만 만들 수 있는데, 글로벌파운드리·UMC·SMIC 등은 이미 포기했다. 삼성과 TSMC만이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두 업체의 등쌀에 밀려 다른 기업들은 고 사양 스마트폰은 포기하고 자동차나 다른 가전에 들어가는 칩 양산에 매달리고 있다. 결국 TSMC 입장에서는 아이폰 주문이 줄면 TSMC도 화웨이 등 다른 업체 물량을 더 맡아야 된다. 삼성과 힘겨루기가 더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는 애플이 얼마나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느냐와 연관돼 있다. 그럼에도 이런 가정을 해 보는 것은 애플과 삼성, TSMC의 미묘한 역학 때문이다. 애플은 TSMC에 지난 2010년 무렵 AP칩을 맡기기 이전에는 삼성에 물량을 맡겼었다. 하지만 삼성이 이후 엑시노스를 개발한 데다, 삼성에게 디스플레이·메모리에 이어 AP 칩까지 맡겨서는 부담이 크다는 판단으로 공급처를 TSMC로 옮겼다. 애플 입장에서는 ‘과도한 삼성 의존’을 우려했다는 얘기다. 업계의 한 임원은 “TSMC의 폭넓은 고객층,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급증하고 있는 파운드리 물량 수요 등을 떠올리면 아이폰 수요 감소를 TSMC의 경쟁력 훼손과 연결짓기는 무리”라면서도 “애플의 부진이 장기화되면 스마트폰 매출 비중이 60%인 TSMC에게도 단기적인 실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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