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뒤덮는 ‘경기 침체’ 그림자…올 성장률 1%

세계성장률은 3~3.5%로 작년 비슷해 대조
ECB, 연말까지 금리 동결 등 대책에도
“더 공격적 경기부양책 필요” 목소리 커져
일부선 “獨 경기부양 땐 유럽에 藥” 주장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4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레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더블린=로이터연합뉴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대부분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확 꺾이는 가운데 더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 신용평가사 스코프 레이팅스는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제성장률을 1% 수준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8%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인데다, 함께 제시한 세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와 유사한 3~3.5% 수준인 만큼 유로존 경기를 상당히 암울하게 예상한 셈이다.

국제기구는 물론 여러 기관의 전망도 하나같이 지난해 발표치에서 훌쩍 내려앉았다. 이미 지난달 ECB는 올해 유로존 성장률을 1.1%로, 유럽연합(EU)은 1.3%로 내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하향 수정 전망을 했다. 재작년 2.4% 성장을 정점으로 경기가 빠르게 식어가는 것이다.

우울한 전망은 개별 국가로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성장엔진’인 독일 2월 제조업 수주가 4.2% 줄어 2017년 이후 가장 큰 하락률을 기록했고, 독일의 주요 5개 경제연구소는 올해 독일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탈리아 정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0%에서 0.1%로 대폭 낮출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에 따라 전 유럽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1일(현지시간) ECB 연례보고서 서문에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인플레이션을 부양하기 위한 자극이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로존 경기 부양을 위해 장기적으로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드라기 총재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보호무역주의와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에 주목하며 “유로존의 통화정책도 인내심과 신중함, 끈기를 가지고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27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ECB컨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로이터연합뉴스

앞서 지난달 유럽중앙은행(ECB) 회의에서는 유로존의 현재 소프트 패치가 예상보다 오래 갈 것이라는 우려 속에 더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이 논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ECB는 마이너스 기준금리와 현 정책금리를 연말까지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연말 올 여름까지만 유지하겠다는 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심각한 경제적 충격’이 없다면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도 곧 필요 없어질 거라던 자신감도 빈말(空言)이 되버렸다. 그만큼 경기 침체가 빠르고 심각하게 유로존을 뒤덮었다는 방증이다. ECB의 현재 기준금리는 -0.4%다.

나아가 다음 회의에는 새로운 조치가 발표될 가능성도 보인다. ECB의 3월 회의록에 따르면 일부 위원들은 2020년 3월 이전까지 금리를 인상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미국·중국 간의 무역 긴장, 영국의 ‘노 딜 브렉시트(제대로 된 합의안 없는 유럽연합 탈퇴)’ 가능성 등 외부 위험이 수출 주도의 유로존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하반기 경기가 반등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보는 지적도 나왔다.

의사록에 따르면 위원들은 “중국의 상황과 같은 경기 둔화의 요인 중 일부가 몇 달 안에 사라질 것 같지 않다”며 “계속되는 불확실성이 투자에 더 강한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이 가운데 역설적으로 독일이 연말 경기 침체에 돌입하면 재정지출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유럽 경제에 ‘약’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간) 덴마크 투자은행인 삭소뱅크의 스틴 야콥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에 출연해,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재정긴축을 강조해온 독일이 침체에 맞서 재정지출과 투자를 늘리면 유럽 경제 환경에 급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기침체는 최소 2분기 연속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이다.

야콥센은 다음 달 유럽 의회 선거에서 포퓰리스트 정당들의 부상이 예상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21년 총리 임기 종료와 함께 정계은퇴를 예고한 것도 내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교체와 함께 유럽 경제 지형의 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변수로 꼽았다. 그는 “미국의 반무역 공세와 무관하게 독일이 올해 4분기에 침체에 빠질 것”이라며 “제조업과 수출에 의존해온 독일이 이제는 경제모델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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