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가요계에는 아이돌 그룹이 뜰 수 있는 마지노선을 데뷔 이후 3년 전후로 보고 있다. 사실상 이 기간 안에 음악방송이나 음원차트에서 1위를 하지 못하면 생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돌 연습생이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 앨범을 내고 활동하기 위해서 최소 5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들고 또 그룹의 운명이 결정되는 3~4년 차까지 가려면 보통 30억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현실에서 ‘0.01%의 성공 확률’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냉혹한 가요시장에서 기획사도 팀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변신과 기다림으로 마침내 결실을 본 그룹이 있다. 비주얼과 가창력, 퍼포먼스를 두루 갖추고도 2015년 같은 해에 데뷔한 트와이스, 여자친구 등에 비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속앓이를 했던 5년 차 걸 그룹 CLC(씨엘씨)다. 최근 그녀들이 데뷔 이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기 그룹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그만큼 더 값진 꽃길을 걷고 있는 CLC에 관해 이야기해 본다.
CLC /사진제공=큐브엔터테인먼트
◇‘포미닛’ 동생으로 이름을 알리다
큐브엔터테인먼트가 포미닛 이후 약 6년 만에 선보인 걸 그룹 CLC는 2015년 3월 19일 첫 번째 미니앨범 ‘첫사랑’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팀명 CLC는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다는 ‘크리스털 클리어(Crystal Clear)’의 줄임말로 수정처럼 변치 않는 매력을 지닌 팀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담고 있다.
데뷔 당시에는 4명의 한국인 멤버 장예은, 오승희, 장승연, 최유진과 1명의 태국인 멤버 손(SORN)으로 구성된 5인조였지만, 이후 2016년 3월 3일 엘키와 2016년 5월 30일 권은빈을 새로 영입으로 현재는 7인조로 활동하는 중이다.
데뷔곡 ‘페페(Pepe)’는 음원 발매 직후 실시간 차트 2위로 첫 진입하고 같은 해 4월 발표한 ‘에이틴(Eighteen)’도 차트 10위권 내에 안착하는 등 나쁘지 않은 ‘데뷔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 발표한 궁금해, 예뻐지게, 아니야(No Oh Oh), 도깨비, 어디야, 블랙드레스 등 괜찮은 음악과 콘셉트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그룹의 인기와 지명도는 따라가지 못했다.
◇ 1,427일의 기다림...눈물의 첫 1위
비주얼과 가창력, 퍼포먼스, 팬덤을 갖추고도 뚜렷한 음원 성적을 내지 못해 모호한 존재감으로 아쉬움이 컸던 CLC는 올해 1월 30일 ‘블랙드래스’ 이후 1년 만에 발표한 여덟 번째 미니앨범 ‘No.1’의 타이틀곡 ‘NO’로 지난 2월 12일 SBS MTV ‘더쇼’에서 음악방송 첫 1위를 차지하며 마침내 기나긴 갈증을 풀었다. 2015년 3월 19일 ‘페페’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무려 1,427일 만에 거둔 성과다. ‘NO’는 한 가지 색으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는 당당한 면모를 강조한 곡으로 소속사 후배 걸 그룹인 (여자)아이들의 소연이 작업했고 특히 유니크하면서도 시크한 매력을 연출해 2017년 1월에 선보인 ‘도깨비’와 2018년 2월 ‘블랙드레스’ 그리고 ‘NO’까지 이어진 ‘걸크러시 콘셉트’가 마침내 대중들에 통했다는 평가다. CLC는 여세를 몰아 19일 또 한번 ‘더쇼’에서 1위를 차지하며 2주 연속 정상에 올랐고 지난 2월 24일 ‘SBS 인기가요’ 무대를 끝으로 ‘NO’의 공식적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CLC /사진제공=큐브엔터테인먼트
◇ 행복한 네 번째 ‘봄’...또 한 번 비상을 꿈꾼다
CLC가 지난달 가장 행복한 네 번째 생일 맞기까지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다. 포미닛 해체 이후 큐브의 대표 걸 그룹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지난해 데뷔, 대세 신인으로 거듭난 직속 후배 (여자)아이들에게도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녹음까지 끝냈던 ‘라비앙로즈’를 ‘아이즈원’에게 보내는 논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CLC에게는 위기가 또 다른 기회가 됐다. (여자)아이들의 실력파 리더 소연과 음반 작업을 통해 선후배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고 ‘블랙드레스’를 이어갈 걸크러시 향기 물씬 나는 ‘NO’라는 인생 곡을 만나 마침내 큐브의 걸 그룹 언니로서 이름값을 하게 됐다.
또 한 번의 비상을 꿈꾸는 CLC. 예전 갈팡질팡했던 콘셉트와 조금은 난해했던 걸크러시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는 비주얼 이상의 안정적 보컬과 음악 그리고 퍼포먼스로 걸크러시의 완성도를 높이고 한층 성숙해진 CLC만의 색깔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먼 길을 돌아 처음 그리고 조금은 늦었지만 음방 1위라는 큰 산을 넘은 CLC가 큐브의 걸 그룹 언니로 보일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최덕현기자 duhy7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