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특정 마니아를 겨냥한 길이 아닌 ‘만만한 길’을 콘셉트로 잡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캠페인도 강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만 참여한다면 대중적으로 파급되고 확산되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바우’ 캠페인을 통해 누구나 쉽게, 작은 행동을 통해 지속 가능한 제주도를 만들 수 있게끔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이유입니다.”
안은주(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상임이사는 지난달 25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ECO&LIFE, 세상을 바꾸는 우리(세바우)’ 캠페인을 이같이 소개했다.
세바우는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서울경제신문, 환경부, 한국관광공사,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추진하는 자원순환 캠페인이다. 관광객이 올레길 인근에 위치한 세바우 참여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해 밖으로 나갈 경우엔 100%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컵(세바우 컵)을 받는다. 음료 한 잔을 마시는 사소한 행동에서 환경을 생각하자는 취지다. 제주올레는 지난달부터 참여 카페를 모집하면서 본격적으로 세바우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안 이사가 세바우 캠페인에서 강조하는 특징은 ‘대중성’이다. 환경단체 등 특정 ‘마니아’층만 참여하는 것보단 여행객이 자연스럽게 환경보호 활동에 동참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선 일단 관광객의 편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휴대용 컵을 소재로 삼은 이유다. 안 이사는 “제주올레는 관광지라는 특성상 여행객들이 휴대용 컵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편의성을 보장하되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시는 종이컵을 재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100%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컵을 공급한다고 해서 자원순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대목에서 안 이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넛지(nudge)’ 효과다. 넛지란 ‘부드럽게 개입해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을 뜻한다. 카페에서 제공하는 세바우 컵을 통해 주인과 손님은 물론이고 손님끼리도 자원순환 취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게 안 이사의 생각이다. 세바우 컵 자체가 ‘넛지’인 것이다. 안 이사는 “가령 세바우 캠페인에 참여하는 카페에서 손님에게 세바우 컵에 음료를 줄 때마다 ’다음엔 텀블러 가져오면 좋아요‘라는 얘기를 한두 마디 던진다면 손님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대중성 있는’ 환경캠페인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세바우는 현재 제주올레가 같이 진행하고 있는 ’클린올레‘ 캠페인과도 맥이 통한다. 클린올레는 한 달에 두 번씩 제주올레 길을 걸으면서 길 위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환경정화 캠페인이다. 이후 꽉 찬 쓰레기봉투를 길 주변에 위치한 클린하우스(제주도내 재활용 쓰레기 수거시설)에서 분리수거한 후 ’인증샷‘을 찍고 이를 제주올레 공식 안내소에 제출하면 스탬프와 기념품을 받는 식이다. 제주올레 초창기인 2009년 자원봉사자와 올레꾼이 올레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게 효시다.
안 이사는 클린올레가 제주도의 자원순환을 도모할 ’사회적 자본‘으로 자리 잡은 데에 의의를 뒀다. 제주도에선 쓰레기 발생을 두고 외지인과 현지인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다. 연간 1,5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가운데 1인당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전국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이사는 “쓰레기를 먼저 줍는 사람을 보면서 먼저 줍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게 클린올레 캠페인의 핵심”이라며 “주워온 사람을 칭찬하는 쪽으로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라고 말했다.
안 이사는 “기존엔 현지인들 사이에서 ’여행자들이 쓰레기를 버린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쓰레기를 여행자들이 주워오니 고마워하시는 주민 분들이 많았다”며 “첫 번째론 쓰레기를 주워본 여행자들에게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겠다’는 인식을 주고, 두 번째론 여행객들이 쓰레기를 줍는 걸 보는 지역민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해비치호텔, KB국민은행, 공무원연금공단 등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구현할 방법으로 클린올레 캠페인을 활용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클린올레가 제주도내에서 CSR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안 이사는 “현대자동차는 신입직원 연수를 매번 제주도에서 하는데 이때마다 클린올레 캠페인을 같이 한다”고 소개했다.
제주올레는 자원순환 활동을 점차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와 함께 페트·캔 자원회수 로봇인 ‘그린자판기’를 주상절리·사려니숲길·쇠소깍·외돌개 등 네 곳에 설치·운영하고 있다. 그린자판기에 페트병이나 캔을 집어넣은 후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해당 번호로 현금성 포인트가 적립되는 방식이다. 안 이사는 “스티로폼이나 어구 다음으로 ‘삼다수(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에서 생산하는 생수)’ 물병이 가장 많이 나오더라”라며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분리수거해서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와 그린자판기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지난달부터 세바우 캠페인도 같이 실시하게 되면서, 제주올레는 그린자판기와 세바우를 연계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당장 오는 9월부터는 그린자판기를 올레길 전역에 보급하는 동시에 종이류도 회수할 수 있게끔 성능을 보완할 계획이다. 올레길 전 지역 카페를 대상으로 세바우 컵을 보급할 계획인 만큼, 그린자판기를 통해 세바우 컵을 그대로 회수할 수 있게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안 이사는 “우리가 엄청 큰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지만, 올레길과 제주도를 잘 보존하기 위해 민간단체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쉽게 할 수 있는 환경보전활동이 무엇일지 고민이 많다”며 “저희도 세바우나 클린올레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제주도 환경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라면 최대한 동시다발적으로 다 벌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주=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