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터넷銀에 공정거래법 족쇄까지 채우겠다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영국의 ‘붉은 깃발법’을 들어 낡은 규제가 금융산업의 혁신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터넷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는 길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지난해 말 국회는 일반기업의 인터넷은행 소유 지분 한도를 10%에서 34%까지 늘릴 수 있도록 특례법안을 통과시켰다. 인터넷은행 사업자인 카카오와 KT는 올해 상반기 대주주에 오를 것이 확실히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정거래법이 가로막았다. 인터넷 전문 은행법상 최근 5년 내 불법 사실이 확인되면 대주주가 못 된다는 규정 때문이다. KT는 지난달 증자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신청했으나 금융당국은 KT가 지하철 광고 입찰 담합 등 2건의 혐의를 받고 있어 증자예정일인 4월25일까지 판단이 어렵다고 밝혔다. 카카오도 심사를 신청했지만 지난 2016년 대기업집단 지정 과정에서 5개 계열사를 누락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문제는 대기업이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이 같은 사소한 불공정 거래를 문제 삼으면 금융 혁신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공정거래만 내세우면 혁신성장과의 충돌은 불가피해진다. 정부가 인터넷은행을 도입한 것은 금융산업에 ‘메기 효과’를 내기 위해서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미꾸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행 업계에서는 출범 2년 만에 이탈하는 직원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규제로 인해 증자가 미뤄진 탓이다.

해외에서는 벌써부터 핀테크 부문에서 혁신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활용하지 못하고 금융혁신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첩첩이 얽힌 규제 때문이다. 규제로 인해 인터넷은행이 증자를 못해 대출이 중단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입게 된다. 이쯤 해서 금융위원회와 공정위원회는 공정거래법이 인터넷은행 혁신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주주 심사와 관련해 경미한 사안은 예외를 인정하는 등 운용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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