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조 회장과 관련한 각종 형사 재판과 검찰 수사도 중단될 전망이다. 장례 일정 등을 이유로 부인 이명희(70)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딸 조현아(45)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재판도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부장 오상용)는 이날 오후 5시 조 회장에 대한 3차 공판준비기일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조 회장이 사망하면서 재판이 취소됨은 물론 공소를 아예 기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회장은 지난해 10월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과 사무장 약국 운영에 따른 약사법 위반,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등 8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조 회장은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면서 중간에 업체를 끼워 넣어 중개수수료를 챙긴 혐의를 받았다. 또 3명의 자녀가 보유하던 주식을 계열사에 비싸게 팔아 계열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을 받았다. 검찰이 파악한 조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 규모는 총 270억원에 달했다.
지난 2010~2014년엔 직접 고용한 약사 명의로 인하대 병원 앞에서 약국을 운영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1,522억 원 상당의 요양급여를 받아낸 혐의도 있었다. 2015년 조현아 전 부사장이 ‘땅콩 회항’사건으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17억여 원의 변호사 비용을 대한항공 자금으로 지출한 혐의도 받았다. 약국 운영에 따른 건강보험공단의 부당이득금 환수 조치에 대한 조 회장의 소송도 중단되게 됐다.
조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도 ‘공소권 없음’으로 즉시 종결될 전망이다. 국세청은 조 회장이 2013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와 면세품을 사들이며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보고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조 회장에게 조세포탈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조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는 선친인 고 조중훈 회장의 해외 보유자산이 조 회장,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미신고된 해외 자산을 조사하던 해외불법재산환수 합동조사단 활동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조 회장은 아들인 조원태(44) 대한항공 사장과 함께 지난달 19일 대한항공 노조로부터 강요죄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재판도 장례 절차 등으로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불법으로 고용한 혐의를 받는 부인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은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던 첫 재판에 나란히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은 201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필리핀 여성 11명을 대한항공 직원인 것처럼 허위로 초청해 가사도우미 일을 시킨 혐의를 받는다. 이 전 이사장은 6명, 조 전 부사장은 5명의 가사도우미를 각각 불법 고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의 변호인은 조 회장 사망을 계기로 재판부에 기일 변경 신청서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은 해외에서 구매한 명품 등을 밀수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오는 16일 인천지법에서 첫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이 공판 일정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