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꽃 하나만 튀지 않았더라도. 하필 그때 바람만 불지 않았더라도. 아니, 밤만 아니었어도.
필연은 모든 우연의 집합체라 했던가. ‘잿빛 비극’은 그렇게 타올랐다. 굶주린 붉은 야수는 미친 듯 날뛰며 하룻밤에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전국의 소방차가 몰려왔고 80이 넘은 어르신도, 요양원을 지키던 수녀도 불과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순식간에 보금자리 479곳이 숯덩이로 변하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이들이 738명이다.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재산 피해가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식목일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밤 강원 고성·삼척·강릉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은 여의도 두배에 달하는 산림을 없애버렸다.
국토의 65%가 산으로 뒤덮인 우리나라로서 어쩌면 산불은 숙명이다. 지난해까지 10년간 4,312건이 발생해 산림 6,680㏊가 불탔다. 여의도 면적의 23배다. 이번에는 양간지풍이라 불리는 강한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번졌다. 밤에 발생해 초기에 제대로 손조차 쓸 수 없었다는 현실에 더욱 아쉬움과 충격이 크다. 작은 전선줄에서 튀긴 불꽃 하나가 일으킨 사고치고는 너무 크다.
이제 이재민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고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산악지역에 대한 전선관리에서부터 열악한 강원도 지역의 안전 인프라, 야간이나 강풍에 무력한 화재진압 헬기의 한계, 그리고 애타게 불러도 제대로 도착하지 못한 열악한 구조 현실 등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뼈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아궁이 옆 나무는 미리 치워 화근을 없애야 한다는 ‘곡돌사신(曲突徙薪 )’의 해묵은 교훈을 다시 꺼내야 한다.
공교롭게 이번 재난급 산불은 우리에게는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며칠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또다시 사회의 안전시스템을 뒤돌아보게 한다. 이번 산불에서 강원도로 수학여행을 간 중학생들이 탄 버스 2대가 전소됐다는 소식에 한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다.
5년 전 물이 우리의 안전시스템을 심판했다면 이번에는 불이 우리에게 ‘얼마나 준비됐느냐’며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 청와대는 7일 보도자료를 내 가며 총력대응·시스템대응·적극대응으로 초대형 산불을 조기에 진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자평했다. 2005년 970㏊ 산림이 불탄 양양 산불 때보다 빨리 진화했다는 비교까지 넣었다.
전국에 소방 총동원령을 내리고 소방관·군경·공무원들이 사투를 벌여 가며 불과 맞선 것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수백명의 이재민이 갈 곳을 잃고 시름에 빠진 상황에, 잔불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나온 정부의 자화자찬은 성급하고 낯부끄럽다. 재난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사실 산불 발생 이튿날 기상청의 당초 예상과 달리 강풍이 반나절이나 일찍 잦아졌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정부는 야간이나 강풍 때 써먹을 수 있는 소방헬기 하나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산속에 널린 전선줄이 불씨가 되지 않도록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얼마 전 광화문의 세월호 천막이 자진 철거됐다. 오는 13일에 ‘기억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안전을 되돌아보는 장소로 재탄생한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안겼다. 이후 정부는 대대적으로 선박안전에서부터 해양안전관리 시스템을 뜯어고쳤다. 여기저기에서 ‘안전’을 앞세우며 정부도 지자체도 경쟁하다시피 관련 예산을 증액시켰다.
하지만 한두 해가 지나면서 어느샌가 언제 그랬냐는 듯 희미해졌다. 요즘에는 ‘복지’ 구호만 난무할 뿐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평소에는 실감조차 할 수 없는 안전예산에 신경을 쓰는 곳은 찾기 힘들다. 수십년 동안 늘 그래 왔듯이. 그때만 반짝. 우리는 복지와 안전이라는 두 바퀴의 자전거를 타고 살아간다. 부디 뒤뚱거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hanu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