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총기전문 저격수, ‘미생’의 쓸쓸한 직장인, ‘4등’의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수영강사를 연기하며 점점 존재감을 높여갔던 박해준, ‘독전’의 마약 조직원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악질경찰’ 속 박해준은 거대 기업의 회장 정이향의 오른팔 권태주 역을 맡아 연기한다. 젠틀하게 수트를 입고 강도 높은 폭력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악(惡)’ 그 자체이다.
배우 박해준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박해준은 ‘권태주란’ 인물을 “모든 악행을 저지르지만 그것이 악행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다고 설명했다. 태주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서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만 죄책감이란 감정도 느끼지도 못하는 무서운 인물이다. 박해준은 가해자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는 양가적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정말 무섭고 나쁜 인물이지만, 그 안에 약간의 슬픔과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인물로 느껴질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태주 안에 정말 외로운 섬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것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있었죠. 태주도 완전히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그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저질러요. 태주라는 인물이 가해자일 수 있지만 또 다른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악질경찰’은 뒷 돈은 챙기고 비리는 눈감고 범죄는 사주하는 쓰레기같은 악질경찰이 폭발사건 용의자로 몰리고 거대 기업의 음모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아저씨’(2010) ‘우는 남자’(2014) 이정범 감독이 5년 동안 준비한 영화이다. 세월호 소재가 상업영화와 만난 작품이란 점에서 화제가 됐다.
아빠이자 가장인 박해준에게도 세월호 참사는 비극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영화가 세월호 참사 소재를 다뤘다는 이유로 지레 겁을 먹진 않았다. 그럴 수록 더욱더 최선을 다해 영화 촬영에 임했다.
“왜 겁을 내야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세월호 소재라는 게 정치권에서 그걸 이용해서 뭔가를 해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담은 이야기는 정말 일어난 참사잖아요. 세월호 이야기에 대해 침묵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더 문제이지 않는가. 물론 세월호 참사를 이용한다면 말이 달라지는거겠죠.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면요. 하지만 ‘악질경찰’은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영화를 직접 보신다면, 허투루 영화를 만들어서 쉽게 돈을 벌려고 만든 영화는 아니란 걸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어요.”
배우 박해준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배우 박해준 /사진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세월호 유가족들과 만난 박해준은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말 하지 않고 조용히 묻혀 지는 게 더 안 좋은 일임을 깨닫게 됐다고. 박해준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미안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사건의 본질만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고 소신 있게 말했다.
“그 친구들을 위로하고 그 가족분들과 같이 분노해주고, 같이 목소리 내주는 게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인간으로서 미안하고 동정심을 갖는 행위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고...그냥 그게 인간이잖아요. 그 본질만 생각하면 되는데 다른 쪽을 보시는 것 같아요. 저도 이제 기성세대가 됐는데, 어린 친구들에게 헛된 희망이 아니라 좋은 길을 가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게 어른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악질경찰’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어른들에 대한 성찰과 위로의 영화이다. 더불어 ‘좋은 어른’에 대한 화두 역시 던진다. 박해진은 ‘좋은 어른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박해준의 진심 어린 한 마디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이었다.
“저는 살면서 주류의 흐름에 들어가거나, 책임감 있게 소리를 내는 걸 의식적으로 피해왔어요. 같이 동참 하지 않더라도 피해만 안 주면 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컸나봐요. 하지만 (세월호 참사)그 일 이 있은 뒤 스스로 부끄러워졌어요. 내가 앞만 보고 잘 산다고 해서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같이 걸어가야 하는데 앞만 보고 걸어간거죠. 저도 내 자식을 얻고 아빠가 됐어요. 아니 내가 자식이 없더라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같이 살아가야 할 몫이 있는거잖아요. ‘좋은 게 좋은 것’ 이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자꾸 외면하고 살아왔던 게 부끄러웠어요. 이 영화를 하기 전에도 그 일에 대해선 늘 미안하고 부끄러웠어요. ”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