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무상교육' 교육감 반발 왜?]'文공약' 성급한 시행에...쌓였던 불만 터져

자체 공약사업 차질 등 위기감..."재원, 정부가 책임져라"
자사고 폐지 문제도 교육청 '방패막이 역할'에 볼멘소리
진보 교육감들도 "파트너 아닌 상하관계로 인식" 목소리

정부의 고교 무상교육 방안이 진보 교육감들이 포진해 있는 시도 교육청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면서 처음부터 삐걱대고 있다. 정부가 재원 확보 방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시행하려다 결국 사달이 났다는 평가다. 대다수가 진보 진영인 교육감들의 집단반발은 보수 정권인 교육부와 진보 교육감들이 대립했던 ‘누리과정’ 사태 당시와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김승환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장(전라북도 교육감)은 10일 “교육감들이 정부 정책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며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모든 교육감들을 설득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교육청 고위관계자도 “추가 지출이 발생하는 내년 이후에는 교육부와 예산 협의가 필요하다”며 정부 정책에 반발할 수밖에 없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협의회는 이날 고교 무상교육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각 교육청의 갑론을박이 계속되며 발표 시점을 하루 연기했다.



17곳 중 14곳이 진보 성향인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고교 무상교육에 반발하는 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집행이 계속되고 있다는 누적된 불만 때문이다. 특히 자율형사립고 폐지부터 고교 무상교육까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위해 지역 교육청이 당국 대신 전면에서 희생당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커지면서 불만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교육계에서는 이번 정부안이 사회적 합의를 위해 6개월의 시간을 번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행 첫해인 올 2학기는 교육청이 전체 예산을 담당하지만 지난해 발생한 세계잉여금으로 추가 실질 예산인 약 2,500억 원을 집행할 수 있어 별도의 지출이 발생하지 않는다. 교육 당국이 여야 합의나 예산 당국 설득 등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전격적인 시행에 돌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상반기 내 관련 법 개정 등을 이뤄낼 부담이 줄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청이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게 됐다는 게 교육청들의 볼멘소리다.


게다가 본격적인 문제는 내년부터 발생한다. 협의회에 따르면 교육청이 기존 예산에서 짜내야 할 신규 부담액은 전체 무상교육 신규 예산의 30% 이상이다. 교육예산이 인건비를 중심으로 매우 빽빽이 짜여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른 교육 정책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정부 사업으로 직선 교육감의 자체 공약 이행에 차질을 빚어진다면 불만은 불가피하다”며 “교육청에 예산 책임을 넘긴 것도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누리과정 시행 당시에도 지역 교육청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방과후교실·돌봄교실 등의 예산이 급감해 공교육 기능에 사교육 비용을 의존해온 농어촌 외 소외지역 및 도시 서민가구 등이 피해를 봤다. 예산 부족으로 교원 명예퇴직이 잇달아 거부돼 신규 임용의 적체가 가열되자 일부 교육청에서 지방채를 발행해 비용을 충당하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했다.

교육계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교육청을 파트너가 아닌 상하관계로 인식하고 교육정책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자사고 폐지도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당정청이 나서서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하는 방식 대신 일선 교육청들이 학교별로 재지정 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점차 악화되는 세수와 학령인구 감소 등을 감안할 때 예산 당국이 교육청의 입장대로 영구재정 성격의 지방교육재정 교부율 인상에 동의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교부율 인상은 소요 재원 2조2,000억원이 교육청 몫으로 넘어간 2016년 누리과정 사태 당시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기댈 것은 누리과정 당시와는 사뭇 달라진 관가의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부 고위관계자는 “대선 공약인데다 두 부총리의 대립으로 보일 우려가 작용해 재정 당국의 입김이 매우 거셌던 누리과정 당시와는 달라진 부분이 있다”며 본격적 예산 투입 이전인 올해 말까지 추가적인 정부 대책 등이 나올 가능성에 여지를 뒀다./김희원·이경운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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