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작가가 쓴 르포 한 권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지방대 시간강사인 그는 자신의 주소지로 필명을 삼았다. 실제로 대학사회에서 그는 이름이 없었다. 교수는 그를 “그냥 연구소 잡일 돕는 아이”로 소개했다. 이 책의 파장이 커지면서 그는 대학사회를 떠났다. 작가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계속 글을 썼다. 훗날 비로소 이름을 밝힌 김민섭 작가의 역작 ‘대리사회’는 그렇게 나왔다. 김 작가는 지금도 가끔 대리운전콜을 잡으며 일한다. 하지만 괜찮다. 그의 정원에는 여전히 이야기의 물길이 출렁거리고 나무가 늘어가니까.
우리는 매일 습관적으로 ‘좋은 하루’라고 인사하지만 오늘도 아마 실망스러운 일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호미를 쥐고 흙을 뒤집으며 각자의 인생이라는 정원을 일구는 중이니까. 당신의 정원에 꽃나무가 몇 그루인지, 화려한 과수가 담장 너머까지 늘어져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지 나는 궁금하지 않다. 비록 초라하고 볼품없는 정원일지라도 해충과 뙤약볕을 견디며 흙바닥에서 보낸 시간만으로 당신은 존경받을 만하다. 가끔 대리운전을 하고 매일 글을 쓰는 김 작가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사인한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우직한 정원사들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