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eport]획일적 보상…능력보다 사내정치…'人材 유출은 人災'

■고급두뇌가 떠난다
☞脫한국, 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고급 인재들의 유출 원인으로 △경직된 보상체계 △봉건적인 직장문화 △다양성을 잃은 일자리 등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이민박람회에서 참관객들이 이민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 나이로 52세인 이모씨. 한국에서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한 그는 26년 근무한 국내 최고의 조선사에서 명예퇴직을 한 후 NIW(National Interest Waiver)를 통해 지난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미국의 우수인력 유치제도인 NIW는 이공계 고급인력 등이 노동허가 등의 조건 없이 미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조선경기 악화로 대규모 감원을 실시하던 지난 2016년에 명예퇴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다만 회사는 명퇴 확정 이후 그동안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해달라며 계약직 형태로 추가 근무해줄 것을 요청했다. 만 50세의 나이에 근무 형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미국행을 결심하고 NIW에 대해 알아보았다. 변호사들은 학사 학위가 전부인 그에게 NIW가 맞지 않는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26년 동안 조선소 생산관리와 프로젝트 매니징 업무만 담당했기에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이씨는 “한국에서 나이 50에 이직과 전직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닌가”라며 한국의 경직된 이직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4월 미국에 입국한 뒤 5개월 만에 루이지애나주의 한 중소 조선사에 직장을 잡았다. 연봉 8만5,000달러. 한국에서 최고 1억1,500만원까지 받았던 것과 비교할 때 연봉은 오히려 줄었지만 미국 생활에 만족한다. 그는 “미 회사 입사 후 그동안 지원한 회사의 이력서에 현 직장을 업데이트했더니 곧바로 연봉 14만5,000달러의 일자리 오퍼를 받았다”며 “한국 직장 후배 두 명도 내 소식을 듣고 이민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공계 박사와 의사, 산업 현장에 밝은 현장형 전문가 등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한국의 경직된 조직 문화, 다양성을 잃은 일자리, 능력과 무관하게 밀려 나가야 하는 사내정치 탓이다. 성원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국내 인력시장에서 좋은 인력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아 (인재들이) 유출되는 것”이라며 “획일적 대우가 없어지기 전에는 인재 유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실리콘밸리에서 주로 박사 과정을 마친 사람들에게 오퍼를 제시한다”며 “사오정(45세 정년)이 될 때 불확실한 것보다는 20대에 불확실한 것이 낫다”고 평가했다. 이어 “6년 전에 박사 과정을 마친 제자가 애플에 지원해 지금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 제자가 애플에 가더니 후배를 추천해서 2년 전에 또 다른 제자 한 명이 실리콘밸리로 건너갔다”고 두뇌 유출 상황을 전했다. 전화숙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과장은 “미국 컴퓨터 분야에는 인재가 몰려들고 또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며 “정보기술(IT)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이 미국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고급인력 대우 외면, 떠날수 밖에

실리콘밸리선 박사 마치면 오퍼

국내선 이직문화까지 경직” 지적

두뇌유출지수 6위 → 43위로 추락


◇꾸준한 탈한국 현상=고급 두뇌들의 탈한국 현상은 단기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미 정부는 EB-1 비자와 NIW를 포함한 EB-2 이민비자를 통해 매년 1,500여명(가족 포함 6,000여명)의 최우수 두뇌급 한국인에게 이민비자를 발급했다. 지난 2017년의 경우 6,100명의 한국인에게, 지난해는 5,745명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통상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현지 직장의 추천이 필요하지만 EB-1·2 비자는 현지 고용인 없이도 이민비자를 발급하는 카테고리가 있다.

문제는 한국 두뇌급 인재의 탈한국 규모가 중국과 인도 등 다른 아시아 지역 국가보다도 인구 대비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중국은 2008년 이후 매년 1만2,000~1만3,000명의 두뇌들이 미국으로 옮겨갔고 인도는 2014년에 최고 3만6,000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지난해에는 1만5,000명대로 규모가 줄었다. 국내의 인재 유출 양상(5,745명)은 지난해 기준으로 인도(1만5,063명)와 중국(1만1,490명)보다 작지만 이들 국가의 인구가 우리나라보다 각각 27배와 26배 많은 점을 감안하면 크게 앞서는 상황이다.

한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두뇌유출지수에서 한국은 1996년만 해도 37개국 중 6위를 기록했지만 꾸준히 하락하면서 2014년에는 63개국 중 37위, 2016년 46위를 기록한 뒤 2017년 54위, 2018년도에는 43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두뇌 유출은 많고 두뇌 유입은 적다는 뜻이다.

“한국 삶에 회의…새 도전할 것”

年 1만8,000명 美·加·濠 이민도



◇미국·캐나다·호주 등으로 매년 1만8,000명 이민=고학력 전문가 이외에도 현지 기업 취업 등 여러 다른 루트를 통해 매년 미국과 캐나다, 호주로 떠나는 이들이 1만8,000명에 육박한다. 캐나다와 호주 정부가 발표한 최근 이민비자 발급 현황에 따르면 캐나다 정부는 2012년 5,311명의 한국인에게 이민 비자를 발급했다. 호주 정부는 3,336명이다. 미국 정부는 1만3,216명에게 이민비자 발급을 허용했다. 한국인의 이민 선호국인 이들 3개국의 한국인 이민비자 발급 건수는 전체 2만1,863건(2012년)에 달한다. 보람이주공사의 한 관계자는 “매년 1만명에서 1만2,000명이 미국으로, 캐나다는 5,000~6,000명, 호주의 경우 2,000~3,000명이 이민을 떠난다”며 “20·30세대는 취업과 새로운 도전을 위해, 40·50세대 역시 새로운 도전과 한국 삶에 대한 회의로 이민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해외 이주 업계는 미국 정부가 지난 한 해 동안 1만1,844명의 한국인에게 이민비자를 발급했지만 이민 신청을 한 뒤 대기하고 있는 사람만도 5,0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주공사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매년 3,000~4,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취업이민 3순위(비숙련자 이민) 지원자에게 2017년부터 비자 발급을 미루고 있다”며 “만일 미국 정부가 취업 이민 3순위에 대해 이민비자 발급을 재개한다면 이민자 수는 폭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탐사기획팀=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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