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인보사'를 위한 변명

이지성 바이오IT부


“이제 피 한 방울로 250여종의 질병을 진단하는 시대가 열립니다.”

지난 200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문을 연 벤처기업 테라노스는 소량의 혈액으로 각종 질병을 진단하는 의료기기 ‘에디슨’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기존 의학의 상식과 경계를 허무는 혁신적인 기술에 시장은 찬사를 쏟아냈다. 스무살을 갓 넘긴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는 ‘여자 스티스 잡스’로 불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한때 기업가치가 10조원까지 치솟았던 테라노스는 2015년 그간 발표한 모든 내용이 거짓으로 밝혀지며 ‘사상 최악의 사기꾼 기업’으로 전락했다. 이후 임상시험 자료를 조작하고 문제를 제기한 직원을 해고하는 등 수많은 범죄행위까지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테라노스는 지난해 파산했지만 창업자 홈스는 여전히 억울하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테라노스의 사기극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는 코오롱(002020)은 단순한 절차상의 착오였고 안전성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인보사를 투약한 3,500여명의 환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첨단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 회사가 의약품의 성분명이 바뀐 것을 몰랐다는 점에서 스스로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바이오제약산업은 어떤 분야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현재까지 밝혀진 정황을 종합했을 때 코오롱의 고의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혁신적인 신약이어도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다면 의약품의 판매 중단을 넘어 회사의 존립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인보사를 선택한 의사와 환자는 코오롱의 기술력과 브랜드를 신뢰했기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코오롱은 인보사를 투약한 환자 전부를 대상으로 10년 동안 추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는 환자를 배려한다면 평생 추적조사를 실시하고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바이오 불모지에서 출발해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K바이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코오롱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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