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하는 한미정상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DC=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도 더 큰 합의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며 “중요한 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톱다운 방식’으로 북미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조기수확(early harvest)’론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5면
문 대통령은 이날 정오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하며 “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최종적 상태에 대해 완벽하게 단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과 원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어떤 것은 좋았다”며 “김정은과의 추가 회담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포괄적 합의를 전제로 단계적 보상을 하는 방안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엄청난 규모의 미국 군사장비를 구매하기로 했다”고 밝히는 등 특유의 화법도 구사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오전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미북 간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고 톱다운 방식으로 성과를 확보하는 게 필요하며 실제로 그것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비핵화 빅딜을 고수하며 강경한 대북 제재 기조를 유지하던 미국은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미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 참석해 대북 제재 해제와 관련한 질문에 “그 부분에서 약간의 여지(a little space)를 남겨두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때로는 특수한 경우가 있다”며 “(목표를) 달성하기에 올바른 일로 여겨지는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경우”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을 향한 강경발언을 자제하면서도 제재에 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전날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돼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며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전했다. /워싱턴DC=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한미정상회담]비핵화 동력 실추될라...톱다운 부활 거듭 강조한 文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왼쪽) 여사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도착해 현관에 마중 나온 도널드 트럼프(왼쪽 두번째) 미국 대통령, 멜라니아(오른쪽) 여사와 인사하고 있다. /워싱턴DC=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톱다운 방식을 통한 조속한 북미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제재 완화에 앞서 비핵화 로드맵을 도출하고 그 과정에서 탄탄한 한미공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는 한미 정상이 의견을 같이했다. 문 대통령이 톱다운 방식을 촉구한 것은 북미대화가 실무선에서 계속 교착 상태에 머물 경우 비핵화 동력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 강경파의 ‘빅딜론’으로 결렬된 하노이회담을 의식한 행보로도 풀이된다.
한미 정상은 이와 더불어 비핵화의 포괄적 합의를 전제로 한 단계적 이행 및 보상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고수해온 ‘빅딜(일괄타결)’과 우리 정부가 내세운 ‘굿 이너프 딜(괜찮은 거래)’의 절충점을 찾는 과정이다. 다만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전략적 버티기’에 돌입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귀국길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9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동한 데 이어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만나 한미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북미 간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톱다운 방식으로 성과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며 실제로 그것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펜스 부통령을 만나서는 “하노이정상회담은 비핵화를 위한 과정의 일부”라고 평가하며 “하노이의 동력을 유지해 조기에 미북대화가 재개되는 것이 긴요하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북미 간 대화 재개에 희망적”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이어 정오께 백악관에 도착해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친교행사 및 단독회담을 한 뒤 소규모 정상회담과 확대정상회담 및 업무오찬을 진행했다. 한국 측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조윤제 주미대사가, 미국 측에서는 폼페이오 장관, 볼턴 보좌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핵심참모로 소규모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미국 측은 대통령 내외를 처음으로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 초대하고 영부인들의 오찬을 주선하는 등 친교행사에 신경을 썼다. 한미 영부인 간의 오찬은 30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포괄적 합의론’에 힘을 실으면서도 북한을 설득할 카드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기존에 청와대가 제시한 ‘한두 번의 연속적인 조기수확(early harvest)’과 이를 통한 북미 간 신뢰확보 방법 등이 회담에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에 앞서 대북 제재와 관련해 “약간의 여지(a little space)를 남기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달러를 벌어오는 북한의 해외파견 노동자의 비자 제한 완화, 북한 국적자의 여행금지 등에 대한 제재 완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한미가 물밑에서 북한을 설득할 논의를 이미 진행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문제는 북한이 응할지 여부다. 북한은 그동안 신뢰가 쌓이지 않는 이상 로드맵 도출은 없으며 핵 리스트 신고 역시 “미국에 공격좌표를 찍어주는 것”이라며 펄쩍 뛰어왔다. 김 위원장은 낮은 수준의 비핵화와 상응 조치를 주고받은 후 핵 리스트 신고 및 로드맵을 고민하자는 방향으로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벌였지만 미 강경파의 빅딜 요구에 막혀 협상은 엎어졌다. 이후 ‘자력갱생’을 연일 강조하며 미국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빠르게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들은 만큼 대북특사 파견 등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왕 즉위를 기념해 오는 5월 말,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6월에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 북미대화를 다시 주선할 가능성도 있다. 서경 펠로(자문단)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우리와 만나도 미국의 강경한 입장만 듣고 뚜렷하게 얻어낼 것도 없어 소극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한 것으로 봤을 때 남북대화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DC=윤홍우기자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