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폐지 정책에 반대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서울경제DB
헌법재판소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등이 청구한 헌법 소원에 일부 위헌 판정을 내린 결과 자사고의 우선선발을 금지한 현행 고입 정책은 그대로 유지되게 됐다. 하지만 자사고·일반고 동시선발 조항은 합헌으로 결정하고 이중지원금지 조항은 위헌으로 둠에 따라 교육 현장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예상된다.
◇일부 위헌인데 현 고입정책은 변화 없나=현행 고입 정책은 지난해 6월 자사고의 헌법소원에 대한 가처분신청 일부 인용 결과에 따라 자사고가 후기전형으로 이동하는 형태로 시행령이 이미 개정돼 한차례 입시를 치뤘다. 이번 헌재 결정은 당시의 동시선발권은 합헌으로 보고 이중지원금지 조항만 위헌으로 본 것으로, 자사고들이 희망해 온 우선선발권은 부활에 실패하고 동시선발을 기본으로 하는 현 고교 입시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 이중지원금지를 위헌으로 봐 현재와 동일하게 자사고 학생이 일반고에 이중지원 할 수 있다. 자사고 희망 학생은 1지망을 자사고로 두고, 2지망부터 일반고를 선택하면 된다. 만일 이중지원금지를 합헌으로 봤다면 자사고에 지원했다 탈락할 경우 재수생이 급증할 우려가 있었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교육현장은 이런 위험에서도 벗어났다.
◇자사고 운명은 어떻게 되나= 헌재 판결로 자사고들이 희망해 온 우선선발권은 사라졌다. 전기 입시를 치르며 우수 학생을 선점해 온 지난 아성을 회복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자사고 입장에서는 이중지원금지를 합헌으로 봐 재수 부담에 따른 기피 현상이 확대되는 결과보다는 좋은 것일 수 있지만, 동시선발권의 회복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기사회생의 반전을 노릴 기회 역시 없어진 것에 해당한다. 우선선발권 없이는 이중지원이 허용되더라도 후기고 입시 내에서 가능하도록 시행령 일부 조항만 개정하면 돼 사실상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가 추진해 온 자사고 폐지정책은 ‘우선선발권 부활’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 날개를 달게 됐다. 정부 역시 재수생이 급증하며 교육현장의 혼란이 가중, ‘교육부 책임론’이 가열될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는 점에서 교육 당국 입장에서도 최선호 시나리오에 해당한다. 자사고 우선선발권을 박탈한 이번 판결로 정부의 자사고 폐지 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자사고 소송인데 왜 외국어고·국제고까지 영향을 받나= 이번 헌법소원은 민족사관고·상산고 등 전국 단위 자사고 이사장들과 학부모·지망생 8인이 낸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해 시행령 개정 단계에서 외고·국제고를 동일한 범주의 학교 형태라 판단, 이들 학교까지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시켜 입시를 진행했다. 일각에서 법리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이 과정에서 외고와 함께 특목고의 주요 축을 구성해 온 과학고는 나홀로 제외돼 전기고 입시를 치루고 우선 선발권도 유지하게 됐다. 영재고가 전기고 보다 앞서 입시를 치른다는 점을 감안할때 과학계열 고등학교를 희망할 경우 영재고, 과학고, 자사고, 일반고 등 총 4회까지 지원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인문 계열 학교 지망자와 형평성 논란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는 서울 자사고를 준비해도 괜찮나=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 서울 학교는 경희고·동성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이화여고·중동고·중앙고·한가람고·한대부고·하나고 등 13개 자사고다. 중 3학생들을 위한 입시 요강이 7월까지는 나와야 하는 만큼 늦어도 6월에는 재지정 평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발표 이후 탈락 학교에 대한 이행명령, 행정 제재 등이 진행될 전망이어서 하반기인 8월 이후까지 파장이 이어질 수 있다. 또 여기서 탈락하는 학교들은 행정소송 등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청은 입시 현장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자사고 입시를 준비한다면 관련 동향을 세심히 체크해 지원 여부를 저울질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재지정 평가에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한다 하더라도 해당 지역 내 명문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있어 희망 학교에 대한 보다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서울 자사고·외고의 앞날은 어떤가=앞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022년까지 5곳 이상의 자사고·외고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서울에서는 올해 13개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경문고·대광고·보인고·선덕고·세화여고·양정고·장훈고·현대고·휘문고 등 나머지 9개 자사고의 재평가가 실시돼 내년까지 전체 22개 자사고 재평가를 마무리한다. 외고의 경우 내년에만 대원외고·대일외고·명덕외고·서울외고·이화외고·한영외고 등 전체 6개 외고가 재지정 평가 단계를 밟는다. 서울국제고도 내년 재평가 대상이다. 결국 서울에서 재평가 대상인 전체 학교가 내년까지 재지정 평가를 마무리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폐지·유지·정원 감축 등이 결정된다. 교육청 일각에서는 폐지 숫자가 교육감 공약인 5개 이상이 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고교 선호도도 달라지나=종로학원 등 입시기관들은 이번 판결로 자사고 폐지 정책이 가속화하며 옛 명문 일반고들의 인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2지망 선택 등 불합격 시 불이익이 더 큰 전국 단위 자사고의 선호도도 현행보다 더 오르긴 어렵지 않겠냐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반면 전기 입시를 주도하게 된 과학고의 선호도는 더 높아질 공산이다. 10일 원서접수를 마감한 과학고 7개교의 평균 경쟁률은 16.57대1로 전년(15.85대1)보다 상승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