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어산지…에콰도르에 버림 받고 미·스웨덴 ‘압박’

NYT “에콰도르 대통령 사생활 유출이 결정타”
美정부 기소 이어 스웨덴 검찰 재수사 검토
2016년 대선 당시 폭로 놓고 美 민주당도 목소리 높여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7)가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7년간 피신한 끝에 11일(현지시간) 전격 체포돼경찰 차량으로 압송되고 있다. /런던=로이터연합뉴스

7년여의 대사관 망명생활 끝에 체포된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7)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간 그를 보호해온 에콰도르가 등을 돌리자 영국 경찰청이 그를 바로 체포하고, 미국 정부와 스웨덴 검찰이 그를 기소하거나 재수사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러시아 정보기관이 해킹한 문건 폭로로 치명타를 입은 미 민주당 의원들도 일제히 어산지 압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체포는 에콰도르 정부 측이 어산지를 내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어산지의 전격 체포가 지난 3월 한 익명 사이트를 통해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과 관련된 200건의 개인 이메일과 사진 등 개인 정보가 무더기로 유출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위키리크스는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으나 에콰도르 정부는 상응 조치를 경고했고, 결국 지난 11일 런던 주재 자국 대사관의 문을 열어 경찰 진입을 허용했다고 NYT는 전했다.

전 백악관 중남미 전문가였던 페르난도 커츠는 NYT에 “에콰도르 정부 역시 어산지가 떠나길 원했다”며 “모레노 대통령에게 어산지는 적이었고, 그를 미국에 넘김으로써 미국과 관계개선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금상첨화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영국 BBC 방송은 12일 스웨덴 검찰이 피해자 측 변호인의 요청에 따라 어산지의 과거 성폭행 혐의 사건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어산지의 성폭행 혐의 사건의 공소시효는 내년 8월까지다.

미국 사법당국도 어산지를 데려가기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로이터 통신은 익명의 미 정부 관리를 인용해 같은 날 미 사법당국이 어산지의 인도를 위한 임시 구속영장을 영국 정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특히 2016년 미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 정보기관이 해킹한 민주당 문건과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 측 이메일을 위키리크스에서 대거 폭로해 선거 구도를 뒤흔든 사건이 다시 조명을 받을지 주목된다.

미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어산지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일제히 진실을 밝히라고 촉구하며 어산지를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 소속 조 맨친 상원의원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그를 인도받을 것”이라면서 “그는 지금 우리의 소유물이며, 우리는 그에게서 팩트와 진실을 얻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2년 6월 런던의 에콰도르대사관에 피신해 망명자로 생활해온 어산지는 11일(현지시간) 런던경찰청에 의해 체포됐다. 호주 국적의 어산지는 지난 2010년 미 육군 정보분석요원이었던 첼시 매닝과 공모해 70만 건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보고서 등을 건네받아 폭로한 뒤 미 정부의 추적을 피해왔다. 또 스웨덴에서 성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영국 대법원에서 스웨덴 송환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한편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선에 따르면, 호세 발렌시아 에콰도르 외무장관은 어산지를 런던 소재 자국 대사관에서 보호하는 비용으로 500만 파운드(약 74억 원)가 소요됐다고 밝혔다. 연간 10억 원 이상이 들어간 셈으로, 이 중 90% 가까운 450만 파운드(약 67억 원)는 보안에 쓰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마리아 파울라 로모 에콰도르 내무장관은 어산지가 대사관에 머무는 동안 대변을 벽에 칠하는 등 망명자로서 보여야 할 최소한의 존중조차 담지 않은 악행을 저질렀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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