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티로봇을 창업한 김경환 고문./권욱기자
한국에 로봇공학의 체계를 처음 세운 토종 로봇 개발자 ‘0세대’는 지난 2017년 작고한 변증남 울산과학기술원 명예교수다. 그 뒤를 잇는 1세대 개발자 중에서는 본지가 최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엔티로봇 본사에서 만난 창업자 김경환(사진) 고문이 있다. 연세대를 졸업한 그는 일본 도쿄대에서 로봇 관련 석·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텍사스A&M대에서 포닥(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1990년대 후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영입돼 로봇 등을 개발했다. 김 고문에게 한국 로봇 산업의 역사를 들어본다.
김 고문은 “한국 로봇 산업사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인물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라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이 한국에 처음 산업용 로봇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김 고문은 “정 회장이 1970년대에 포니 승용차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해외 견학을 해보니 이미 로봇을 자동차 용접하는 데 쓰는 기업들이 있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현대차의 자동차 생산량은 한 달에 몇백 대 수준이었음에도 정 회장은 자동차 생산에 로봇을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해 현대로봇주식회사를 만들었다”고 되짚었다.
한국 로봇 산업 확산의 계기는 1990년대 초반 현대차의 대미 수출 본격화였다. 김 고문은 “당시 미국 바이어들이 ‘미국에 자동차를 팔려면 (품질 관리를 위해) 용접 로봇을 쓰라’고 현대차 측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현대차는 시범적으로 소량 도입했던 로봇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 공정에 로봇을 도입했고 대우·두산 등도 줄줄이 동참했다. 김 고문은 “(1990년대) 당시 우리 기술이 일본 대비 80% 수준까지 따라갔는데 한국의 중요한 대기업들이 뛰어들었으니 머지않아 일본 수준까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IMF 사태(외환위기)’가 터졌다”며 아쉬워했다. 결국 대기업들이 당장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로봇 사업을 줄줄이 포기했다. 김 고문은 “당시 대기업 중에선 현대만이 현대로보트 주식회사를 현대중공업으로 편입시키는 방법으로 로봇 사업을 지키려 했다”고 전했다.
김경환 엔티로봇 창업자가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보행을 돕는 재활 로봇을 소개하고 있다. /권욱기자
위기에 놓인 로봇 산업에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훗날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심학봉 산업자원부 과장이었다. 김 고문은 “2008년 당시 심 과장이 여러 성장동력사업 중 로봇만이 당장 전후방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로봇을 해야 한다’고 기획재정부 등을 설득했다”고 술회했다. 또 “심 과장의 추진력으로 ‘로봇특별법’도 만들어졌다”며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그가 (산자부 과장 당시에는) 한국 로봇 산업의 정책기반을 닦은 불세출의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특별법이 제정된 후 우리 정부는 로봇 산업을 일관되게 육성했지만 성과로 보면 실패했다고 김 고문은 진단했다. 정부가 매년 수백억 원 이상을 지원해주는데도 개발된 로봇 중 제대로 상용화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가연구과제의 성과를 폐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혔다. 김 고문은 “우리 정부는 (국가연구개발 과제 사업에서) 어떤 회사가 참여해 노력하면 해당 회사에 기술을 우선 이전받을 수 있게 해 독점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 기업이 불과 직원 1~2명짜리 벤처기업일 경우 이전받은 특허기술로 제품을 한 번 만들었다가 안 되면 기업과 함께 기술이 사장되고 만다는 것이다. 로봇 분야에서 빠르게 추격해오는 중국은 다르다. 그는 “독일이나 중국의 경우 (국가과제로 기술을) 연구개발했다면 이를 ‘공공재’라고 생각해 모든 기업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소개했다.
김 고문은 로봇 산업의 발전 방안에 대해 기술 개발 자체보다 이것으로 어떤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할지에 대한 ‘해석’과 ‘기획’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