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반대 손팻말 든 시위자/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는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가운데 정부가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할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관리해온 합법적 수술과 정책상 완전히 동일한 의료적 혜택을 부여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합법적인 임신중절수술 대상 여성은 건강보험 적용에 따른 수가를 지급 받는다. 임신 8주 이내는 약 10만 원, 8~11주는 13만 원, 12~15주는 16만 원, 16주 이상은 20만 원을 넘는 수준이다.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비율은 20%(입원) 또는 30%(외래)다. 현재 시행 중인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유전학적 또는 전염성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 된 경우·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낙태가 가능하다.
반면 그동안 ‘음지’에서 진행됐던 임신중절수술의 경우 수술비가 건강보험 적용 비용의 2배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발표된 정부 연구용역(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그간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들이 지출한 비용은 30만~50만 원이 가장 높은 비율(41.7%)을 차지했으나 50만~100만원도 32.1%로 그에 못지않았다. 30만 원 미만은 9.9%뿐이었다.
이에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인공임신중절수술에는 건강보험 적용을 달리할지, 아예 구분 없이 동일한 보험 혜택을 줄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팽팽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 적용을 찬성하는 입장에선 ‘임신 중절을 결심하게 되는 주원인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점을 근거로 든다. 지난 11일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에 맡겨 낙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5만 여건의 낙태가 이뤄졌으며 이 중 약 33%가 ‘경제 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를 이유로 꼽았다. 한 전문의는 “낙태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다”며 “수술 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이기 때문에 이제 정부 차원에서 건강보험 등 최소한의 사회적 인프라를 마련해줘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반면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낙태 관련 건강보험 적용을 반대하는 입장에선 ‘건강상 문제가 아닌 개인의 선택에 의한 임신중절수술인데 국가가 보험처리를 해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가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태아 생명권보다 더 무겁게 본 만큼 개인의 선택에 대해 공공재를 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이 모자보건법이 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또 보사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이유(32.9%) 외에도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33.4%)’, ‘자녀를 원치 않아서·터울 조절(31.2%)’의 낙태 이유도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도 이들 주장의 주된 근거다.
아울러 국민건강보험의 목적 및 기능도 이들이 건강보험 적용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 국민건강보험법은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해 보험급여를 시행함으로써 국민건강을 향상하고 사회보장을 증진함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측이 제시한 건강보험의 기능에 따르면 건강보험은 모두에게 필요한 기본적 의료를 적정 수준까지 보장하고 ‘소득 재분배’ 기능을 수행한다. 건강보험 적용을 반대하는 입장에선 “사회·경제적 이유로 인한 임신중절수술은 이에 부합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선 낙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보다 산부인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올바른 수술법을 가르침으로써 여성의 건강상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간 ‘불법’이란 이유로 국내 의과대학에서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은 탓이다.
한편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합헌 불일치’ 결정을 내리면서 낙태 허용 시기와 기준을 비롯한 이후 과제는 국회의 몫으로 돌아갔다. 15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낙태죄 폐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발의된 첫 법안으로 임신 14주까진 임산부의 요청만으로, 14~22주까진 태아의 건강 상태나 사회·경제적 사유로 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정의당을 제외한 다른 당들이 종교계 표심을 의식하고 있어 임신중절수술의 건강보험 적용을 포함한 관련 입법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현주 인턴기자 apple260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