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내년 1월 31일부터 화장품 총 중량의 0.1% 이상 실리콘을 넣은 제품의 출시를 금지한다고 합니다. 문제가 된 실리콘은 ‘사이클로펜타실록산’으로 내분비계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화장품 사용제한 원료로 지정했습니다. 앞서 실리콘 쌍둥이 형제인 ‘사이클로테트라실록산’도 일찌감치 발암성, 유전자변이, 생식독성이 있는 유해성 물질로 분류된 바 있죠. 한국에서는 샴푸니 바디워시니 각종 화장품에 곧잘 쓰이는 실리콘인데 화장품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실리콘 0.1%’의 허들을 만들어 놨다고 하니 ‘대체 실리콘이 뭐길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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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너 정체가 뭐니=일반적으로 피부에 발랐을 때 발림성이 좋고 얇은 보호막을 형성해 수분증발을 막아 보습기능을 합니다. ‘오, 실키한데?’라고 느낄 때 살짝 실리콘이 들어갔나 의심하면 거의 백발백중이죠. 실리콘이 형성시킨 오일막은 윤기를 부여하기 때문에 간혹 정제수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이거 너무 심각하게 흡수가 잘 되는데?’ 라고 느낀 화장품을 화장품 R&D 센터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실리콘이 자그마치 60% 이상 들어간 경우도 있었답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것을 왜 EU는 입국을 못하게 한다는 말이죠? 문제는 피부를 일시적으로 촉촉하고 보이게 만드는 이 막은 피부 모공을 막아 호흡을 방해해 오히려 안으로 트러블을 일으키고 건조함과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겁니다. 유명 화장품 연구소 A 박사는 “실리콘은 발암 물질인 규소가 주성분인 세포 독성 물질로 많은 양이 들어가면 민감한 피부는 트러블과 아토피 증상을 일으킨다”고 귀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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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흡수 유해물질 90%가 축적…경피독을 아시나요=1908년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메치니코프 박사는 “사람이 똥은 먹어도 죽지 않지만 똥독이 오르면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남기며 대장의 청결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여기서 똑똑한 우리는 ‘먹는 독보다 피부에 스며드는 독(경피독)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캐치할 수 있습니다. 먹는 독은 그나마 체내에서 해독 가능성도 있지만 경피독은 순식간에 흡수돼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는 얘깁니다.
현대인들은 테러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독극물이 아니더라도 축적되면 거의 독극물 수준의 유해 화학물질들에 심각히 노출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가 믿고 써온 화장품이나 목욕용품에서 나온 이름도 어려운 성분들 때문에 원인 모를 병에 걸리고 있다는 거죠. 실제로 오모리디카시의 저서 ‘음식독보다 더 무서운 경피독’에 따르면 여성들은 매일 화장으로 515개 화학물질을 접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리 좀 한다는 남자들도 적어도 스킨, 로션, 왁스, 샴푸, 바디로션, 향수 등 5~6가지 정도는 보통 사용하죠. 여자들은 스킨케어를 비롯해 기본적으로 13~15가지의 스킨케어 및 색조 화장품, 바디제품을 쓴다고 합니다. 사실 화장품 마니아이던 저는 최근 유럽에서 불고 있다는 ‘스킨케어 미니멀리즘’에 동참해 가짓수를 확 줄여 화장대를 싹 정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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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업계 핫이슈는 ‘성분’=전세계 화장품 업계는 ‘성분 경쟁’이 한창이죠. 플라스틱, 폐비닐, 미세먼지 등 갈수록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화장품도 이제 착한 성분이 들어간 제품만 살아남게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케미칼 포비아(화학물질 공포증)’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이 10만 여 개의 화장품 성분 분석 어플 ‘화해’를 켜고 성분을 하나하나 따지며 화장품 업계를 압박하고 있는 거죠. 성분 논란이 심해지자 그나마 의사, 제약사가 만든 일명 피부과화장품 ‘더마화장품’이 안전한 듯 보여 ‘더마트렌드’가 형성되더니 최근에는 환경 이슈를 타고 제품에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모든 성분이 식물성 원료로 만들어진다는 ‘비건 화장품’이 부상했습니다. 이 흐름을 타고 아모레퍼시픽 라네즈와 에이블씨엔씨의 어퓨는 비건 화장품을 선보이며 전략적으로 트렌드에 올라 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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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은 착한 화장품 끝판왕 ‘클린뷰티’ 열풍=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는 2~3년 전부터 클린뷰티 열풍이 불고 있다죠. 환경 뿐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까지도 챙긴 착한 화장품의 끝판왕입니다. 클린뷰티를 정의하자면 첫째 동물 실험 반대, 둘째 100% 자연 유래 성분, 셋째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 그린등급 원료를 사용해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한 제품입니다. 대표적인 클린뷰티 브랜드로 꼽히는 벤스킨케어의 브라이언 오 대표는 “천연원료라고 무조건 다 피부에 안전하고 좋은 것이 아니며 이들 중에서도 피부 자극을 일으키는 원료들이 있다”면서 “원료의 천연성 보다 피부에 안전한 원료만을 사용하는 브랜드를 통칭해 클린뷰티 브랜드라고 한다”고 설명합니다.
역시 발 빠른 미국과 영국은 클린뷰티만 다루는 온·오프라인 채널이 있군요. 기네스 펠트로가 만든 굽(Goop), 더 디톡스 마켓(The Detox Market), 크레도(Credo), 폴레인(Follain) 등입니다. 이 곳에 입점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를 거칩니다. 유통채널이 먼저 입점 러브콜을 보낸 브랜드에 한해 원료 검토를 마친 후 1~2달 이상 제품을 테스트해 통과되면 입점할 수 있답니다. 한국처럼 수수료를 내기만 하면 입점할 수 있는 구조와는 천양지차죠. 특이한 원료와 성분을 ‘천연’이나 ‘자연’으로 둔갑시켜 ‘성분 마케팅’을 하는 브랜드가 범람하는 한 뷰티 강국으로서의 K 뷰티의 미래는 어두워 보일 따름입니다. 한국에서도 소비자의 안전을 생각하는 클린뷰티 브랜드와 이를 알아 봐주는 착한 유통 채널이 등장할 수 있을까요.
/생활산업부장 yvett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