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파업 이탈…동력 잃은 르노삼성 노조

시뇨라 사장 “韓 투자 계속” 밝히고
현장선 “방향성 잃었다” 불만 커져
강경투쟁에 반대하며 줄줄이 떠나
다급한 勞, 노사협상 하루 앞당겨


르노삼성자동차 조합원들 53%가 파업에 불참했다. 파업에 돌입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50%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미 절반 이상이 노조의 강경 투쟁에 대한 반대를 표하며 일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투쟁동력이 급격히 약해진 노조는 사측에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하루 앞당기자고 요구해 7개월 간 노사가 합의해 경영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17일 르노삼성자동차에 따르면 이날 주간 기준 파업 참석율은 47%로 지난해 10월 첫 파업을 한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9월 20일 기본급 10만 667원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9월 20일 파업 찬반투표를 했고 85.1%의 찬성률로 가결돼 10월 4일 첫 파업에 돌입했다. 7개월간 58차례에 234시간에 걸쳐 진행한 부분파업으로 인해 이달 15일 기준 르노삼성의 매출 손실은 약 2,600억원에 달한다. 이 사이 닛산 본사가 위탁 생산하던 로그 물량을 4만 2,000대 주문을 취소했고 이 가운데 2만 4,000대는 경쟁 공장인 일본 규슈공장으로 이전했다. 브랜드 이미지가 악화되고 국내 판매도 반토막 나 이익이 급격히 줄고 있다. 내년 나올 신차인 XM3의 유럽 수출 물량도 본사가 파업 등을 이유로 스페인 공장에 배정하려는 움직임마저 나오고 있다.

구성원의 절반 이상이 파업 대열에서 이탈한 것도 ‘공멸’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반영된 결과다. 이대로라면 군산공장의 문을 닫은 한국GM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달 10일 70%에 달했던 파업 찬성률은 17일 기준 47%까지 곤두박질치며 사실상 노조의 파업 동력이 상실돼가고 있다. 파업 참석률이 기준(찬성 50% 이상)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벌써 현장에선 “파업이 방향을 잃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초 노조는 기본급 10만 667원을 인상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사측은 기본급 대신 1,720만원의 변동급여를 지급하겠다고 하고 최근 이 가운데 이익배분금(PS) 420만원과 생산격려금(PI) 약 600만원을 배분한 상태다. 파업이 끝나면 남은 금액이 지급된다. 조합원들로선 실질임금이 상승한 것이다. 그런데도 노조 지도부는 갑자기 인사경영권에 대한 권한을 요구했다. 작업 전환 배치 시 노조의 합의권 등이다. 회사가 지키지 못하면 △해당 부서장 징계 △통상임금 500% 보상 △위로휴가 부여 등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이렇게 파업을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며 “노조 지도부는 파업 참가 여부를 따져 타결금을 차등지급하겠다는 말까지 해 더 인식이 나빠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19일로 예정된 26차 임단협이 18일 개최된다. 협의가 결렬된 지 9일 만이다. 협의는 당초 19일로 예정됐는데 노조가 하루 앞당겼다. 이를 두고 절반 이상의 파업인원이 이탈하며 궁지에 몰린 노조가 입장을 전향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질 임금이 올랐기 때문에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6일 도미닉 시뇨라(오른쪽) 르노삼성자동차 사장이 오거돈 부산시장을 만나 부산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경영 활동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사진제공=부산시

도미닉 시뇨라 사장이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밝힌 것도 노조원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뇨라 사장은 전날 오거돈 부산시장을 만나 “르노삼성은 한국 시장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업으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시뇨라 사장이 “부산공장이 르노 그룹 차원에서도 D세그먼트(중형) 차량의 연구개발과 판매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서 생산할 신차를 추가로 내놓을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 르노그룹 소속 연구소 가운데 차량의 디자인부터 부품조달, 생산까지 할 수 있는 연구소는 프랑스와 한국, 루마니아 등 세 곳이다. 이 가운데 프랑스는 A·B·C세그먼트의 소형을, 루마니아는 저가형 차량에 특화돼있다. 한국은 중형급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개발 역량이 높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SM6로 알려진 탈리스만과 중형 SUV인 QM6도 한국이 개발을 주도했다”며 “향후 중형급에서 나오는 새 모델은 한국이 개발을 주도하고 국내 시장에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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