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기획사의 신인들은 그나마 ‘00의 동생그룹’과 같은 후광을 내세우지만 중소기획사 신인들은 데뷔 때부터 생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 들어가야 한다. 이 때문에 신인 가수들은 특이한 컨셉트나 세계관을 내세우는 동시에 토끼탈 쓰기, 버스킹, 개그 등 독특한 데뷔 형식으로 눈도장을 한 번이라도 더 찍으려 안간힘을 쏟는다. 특히 방탄소년단(BTS)의 성공 스토리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신인 그룹들도 외국인 멤버 등을 포함해 세계를 공략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과 적극 소통하는 게 이전과 달라진 트렌드다.
핑크판타지에서 토끼탈을 쓴 멤버 ‘대왕’/사진제공=마이돌엔터테인먼트
핑크판타지/사진제공=마이돌엔터테인먼트
작년 데뷔 신인 60여팀…신인상 받는 팀은 극소수
“빌보드 1위하면 얼굴 공개” 토끼탈 쓰고 나오거나
팬과 공감대 형성 위해 독자적인 ‘세계관’ 만들기도
◇“처음부터 튀지 못 하면 도태된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가수로 수입을 신고한 인원 4,667명 가운데 상위 1%(46명)는 연 평균 42억여 원이나 벌어 들였다. 하지만 가수 하위 90%(4,201명)의 연평균 수입은 870만원에 불과했다. 월 70만원 가량으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한 셈이다. 그나마 국세청 신고 대상이 기성 가수까지 포함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막 데뷔한 신인 가수들의 사정은 훨씬 더 열악할 것으로 추정된다. 어릴 때부터 학업을 포기하고 연습실에서 먹고 자면서 꿈과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벤처 기업보다 낮은 성공 가능성이다.
이 때문에 신인 가수들은 데뷔 때부터 어떻게든 주목받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한마디로 “튀어야 산다”는 것이다. 지난해 데뷔한 8인조 걸그룹 핑크판타지의 멤버 ‘대왕’의 경우 항상 토끼 탈을 쓰고 등장한다. 음악방송 무대는 물론 뮤직비디오, 팬 사인회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끼 탈을 벗고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빌보드 차트 1위를 달성한 이후라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웠다. 이 밖에 음악과 개그를 동시에 하는 ‘개그아이돌’ 코쿤 등 이전에 없던 새로운 컨셉트를 내세운 팀들이 생겨났다.
그들만의 특별한 세계관을 설정해 꾸준히 팬들을 유입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영화 ‘스타워즈’나 ‘마블’ 시리즈처럼 독자적인 시간적·공간적·사상적 배경을 갖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엑소와 BTS도 자기만의 세계관을 통해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BTS는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등 앨범 발매할 때마다 연작 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차별화된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이는 팬들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세계적인 팬덤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달의 소녀 /사진제공=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이후 등장한 이달의 소녀, 공원소녀 등 신인 걸 그룹도 다양한 세계관을 선보이고 있다. 이달의 소녀는 12명 완전체로 데뷔하기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선보인 유닛 3개는 저마다 다른 콘셉트를 내세운다. 1/3은 지구인 ‘지상계’, yyxy는 이상향인 ‘천상계’, 오드아이써클은 그 ‘중간계’다. 각 유닛에 속한 멤버들은 각자가 상징하는 과일과 동물이 있고, 각자의 비밀을 품고 있다. 네티즌들은 각 멤버들에게 숨겨진 비밀을 풀거나 뮤직비디오에서 각 요소를 해석해내면서 팬이 됐다. 아이돌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이달의 소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그룹”이라며 “BTS 이후 여성 K팝 그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차기 기대주로 꼽힌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뮤직비디오에서 이들의 세계관이 드러나는데 팬들이 마치 ‘미드(미국 드라마)’의 새 에피소드를 감상하듯이 ‘이게 그 얘기였어’하며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작곡가 김형석이 프로듀싱한 공원소녀도 지난해 발매한 데뷔앨범 ‘밤의 공원 파트 원’에서 멤버 일곱 소녀의 꿈과 이야기, 세계관 등을 한 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처럼 담아냈다. 타이틀곡 ‘퍼즐 문(Puzzle Moon)’은 조각난 퍼즐 모양의 달이 하나로 모였을 때 소녀들의 꿈과 희망이 이뤄지고 불완전한 자신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데뷔 앨범의 연장선상인 ‘밤의 공원’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 ‘밤의 공원 파트 투’를 선보였다.
한중합작 그룹 텐(T.E.N)/사진제공=목그룹(MOK GROUP)
“우리도 BTS처럼” 해외 시장 공략·소통 강조
일본인·중국인 등 외국인 멤버 넣어 팀 결성
신비주의 벗고 SNS로 일상·안무 영상 공유
◇“BTS가 롤 모델” 데뷔부터 해외 공략·소통 강조= BTS를 필두로 K팝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신인들도 데뷔부터 해외 시장을 공략한다. 5인조 걸그룹 네온펀치의 경우 지난해 국내 데뷔 두 달 만에 일본에 진출해 쇼케이스를 열고 페스티벌에 참석했고 중국 웹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7인조 남자 아이돌인 타겟(TARGET)은 국내 데뷔 전에 일본 삿포로·도쿄·나고야·오사카에 위치한 제프 공연장을 도는 ‘제프(Zepp) 투어’로 먼저 얼굴을 알렸다. 제프는 소니뮤직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제프 라이브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고 있는 라이브 하우스 체인이다.
해외 시장을 겨냥해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경우도 훨씬 많아졌다. 지난해 데뷔한 그룹 텐(T.E.N)은 한국의 리온 파이브(Rion Five) 멤버 7명과 중국 이상 미디어 그룹 소속 3명이 모여 결성된 한중 합작 아이돌 팀이다. 공원소녀에도 일본인, 중국인 멤버가 포함돼 있다. 지난해 데뷔한 3인조 걸그룹 허니팝콘은 일본에서 아이돌로 활동했던 이들로만 구성됐다. 세계 속에 한국의 멋이나 미를 알리려는 모습도 눈에 띈다. 데뷔를 앞둔 7인조 남자 아이돌은 이엔오아이(ENOi)는 K디자이너 브랜드의 의상을 선보여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깊이를 알리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이들은 데뷔 방식도 오는 19일 서울 신촌서 버스킹 공연으로 다른 팀과 차별화했다.
베리베리 미니 앨범 ‘VERI-ABLE’ 오피셜 버전 커버 이미지. /사진제공=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특히 BTS 이후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은 이제 필수가 됐다. 신비주의 컨셉트보다는 팬들에게 멤버들의 일상이나 연습하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친구나 가족처럼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의 7인조 남자 아이돌그룹 베리베리의 경우 멤버들이 음악, 퍼포먼스는 물론 영상 컨텐츠까지 직접 제작하고 다양한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소통형 크리에이티브 아이돌’을 표방하고 있다. 6인조 남자아이돌인 원어스(ONEUS)는 지난 2017년 11월부터 데뷔 프로젝트 ‘RBW 연습생 리얼 라이프(Real Life) 데뷔하겠습니다’를 통해 트레이닝 과정 등 자신들의 성장 모습을 팬들과 함께 공유해 팬덤을 늘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BTS 신화가 지속되면서 K팝이 세계적인 장르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이 같은 큰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기획사들이 신인 발굴에 더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김현진·한민구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