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오죽하면 한은까지 성장률 내리나'...확산되는 금리인하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 지난 18일 한은 기자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중반으로 낮춘다는 발표가 나오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이 빨라졌습니다. 얼마 후 기자실에 나타난 이주열 한은 총재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2.5%로 낮춘다고 발표했습니다. 올해 성장률 전망을 2.6%로 유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얼마나 안 좋으면 한은까지 낮추나’=기자들이 성장률 전망 ‘동결’을 예상한 것은 그간 한은의 행보 때문입니다. 다수의 시장 참가자와 전문가들이 ‘금리인하’ 가능성을 얘기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지 않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 명분 중 가장 중요한게 경제성장률 전망입니다. 성장률 전망을 동결하면 금리인하에 나서지 않겠다는 밑밥을 까는 셈입니다.

한은은 체질적으로 금리인하를 싫어합니다. ‘금리는 올리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한은의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습니다. ‘금리인상=한은 독립성 확보’라는 공식이라도 존재하는 듯이 말입니다. 이는 과거 역사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은 항상 물가를 희생하더라도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것을 선호하게 마련이고, 권력자의 의지는 금리에도 반영되곤 했습니다. 이런 과거의 아픈 기억이 한은으로 하여금 시도때도 없이 인플레이터 파이터가 되도록 만든 것입니다. 지금도 한은 사람들에게 ‘금리 어떻게 하는게 좋을 것 같냐’고 하면 자동응답기 틀듯 ‘내릴때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경제가 이렇게 안 좋은데”라고 반문하면 “지표는 나쁘지 않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답변이 돌아옵니다. ‘한은사(寺)’라는 비아냥이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한은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수출과 투자 등 1·4분기 지표가 워낙 안 좋은 까닭에 성장률 전망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7% 추정된다”(이주열 총재)는게 한은의 입장니다. 2.5%는 잠재성장률을 한참 밑도는 수치이지요.



새로운 성장률 전망 2.5%에는 추가경정예산은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추경규모가 얼마나 될지, 어디에 지출할지에 따라 성장률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가 결정되겠지만 추경 감안시 2.6% 달성은 가능하다는 계산도 한은은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독립’을 외치지만 정부눈치 보지 않을 수 없는 게 한은입니다. 결과적으로 성장률을 2.5%로 낮춘 것은 추경을 추진하는 정부에 힘을 실어준 측면도 있는 것입니다.

◇‘통화긴축 공식 종료’=이번 금통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한은 통화정책방향문의 문구 변화입니다. 통방문을 보면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이라는 문구가 삭제됐습니다.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은 통화긴축 즉 ‘금리인상’을 의미합니다. 이 문구를 삭제했다는 것은 이제 금리인상이라는 정책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한은이 ‘매파’적 스탠스를 버리지 않으려 애써 노력해왔지만 이번 금통위를 계기로 완전히 ‘중립’으로 돌아섰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제 남은 건 ‘동결’ 내지 ‘인하’입니다. 한은은 일단 ‘인하불가’론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주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금리인하를 검토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 근거는 ‘상저하고’ 입니다. 우리 경제가 상반기에는 지지부진하겠지만 하반기에는 다소 살아날 것이라고 한은은 추정합니다. 특히 하반기부터 반도체 경기가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한은의 전망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은 다릅니다. 반도체 경기가 다소 살아나더라도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되살릴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최근 기업들의 투자 부진 등을 감안할 때 하반기에도 경기가 살아나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대세입니다. 미중 무역분쟁과 노딜 브렉시트 등 대외여건도 단기간에 개선되기 힘듭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한은 기자실에서 금통위 금리동결 결정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뒷북만 치는 한은...하반기엔 떠밀려서 인하할 수도”=한은은 ‘선제적 통화정책’을 외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실제로는 항상 시장예측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둔화 가능성과 금리인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한은은 당시만 해도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 운운하며 금리인상을 외쳐왔습니다. 물론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지요.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 한은은 일단 ‘중립’으로 돌아섰습니다. 남은 절차는 ‘인하 깜빡이’를 켠 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시장에서는 이번 성장률 전망 하향이 ‘인하 깜빡이’를 아주 약하게 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장률 전망 하향=금리인하 출구 찾기’라는 것입니다. 이제 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오면 조만간 인하를 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무리가 없습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성장률 전망 하향과 통방문 문구 등 한은의 스탠스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된다”며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최근 경제지표를 보면 성장률 전망 하향은 당연한 조치”라며 “일단 금리를 동결하되 상황에 따라 인하로 선회할 수 있는 출구도 열어놓은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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