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처럼 국회의사당이 자주 이사한 나라도 드물다. 국회의 역사를 꼼꼼히 뒤져보면 대한민국 국회가 의사당으로 사용한 건물은 10여곳에 이른다. 제헌국회가 첫발을 디딘 곳은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홀이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군과 행정부가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는 바람에 국회도 대구 문화극장과 부산 문화극장을 임시의사당으로 썼다. 그 뒤 서울 수복과 1·4후퇴, 서울 환도 등을 거치면서 국회의사당도 중앙청 중앙홀→서울 태평로 시민회관 별관(현재 서울시의회)→부산극장→경남도청 무덕전→중앙청 중앙홀로 옮겨 다녔다. ‘전시(戰時) 국회’인 제2대 국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허가증을 받아 군복 차림에 권총을 차고 회의에 참석했다. 제3대 국회가 개원한 1954년 6월부터 1975년까지 다시 태평로 시민회관 별관을 의사당으로 사용했다. 양원제가 실시된 제5대 국회 때 참의원은 서울시청 뒤 대한공론사를 의사당으로 활용했다. 그 뒤 6년간 공사를 거쳐 1975년 8월15일 현재의 여의도 의사당이 준공됐다.
여의도 의사당 광장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 쌍의 해태상이다.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수호신이자 화재나 재앙을 물리친다고 알려진 상상 속 동물이다. 의사당 준공을 앞두고 자문위원이었던 소설가 박종화 선생이 ‘의사당을 화재에서 예방하려면 해태상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시 해태제과가 3,000만원을 들여 해태상을 조각해 국회에 기증했다. 또 그때 해태주조에서 만든 백포도주 72병을 해태상 아래에 묻었는데 100년 후인 2075년 와인을 개봉하기로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김종해 국회 자료조사관은 “2075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르익었을 때 와인을 개봉해 축하 잔치를 열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시가 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해 3월26일부터 4월5일까지 세종청사 근무 공무원 1,066명을 대상으로 행정수도 인식을 조사한 결과 ‘국회 세종의사당 설치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85.8%에 이르렀다. 의사당 본관이든 별관이든 잦은 국회 이사는 바람직하지 않다. /김광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