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됐다 다시 세운 '3·1독립선언기념탑’

김종영미술관 3·1운동 100주년 특별전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의 기념비 뒷얘기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 설치된 김종영의 ‘3·1독립선언기념탑’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휘날리는 깃발 아래 도포 차림의 선각자, 교복 입은 학생, 한복 여민 여인 등이 양팔을 높이 들어 외치고 있다. ‘대한독립만세!’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3·1독립선언기념탑’이다. 한국 추상조각의 1세대 작가인 김종영(1915~1982)이 서울대 교수이던 지난 1962년 봄, 월전 장우성의 추천을 받아 “조각가로서 민족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며 제작한 조각이다. 철거됐다 다시 복원된 기념비조각이라는 유일무이한 기록도 가진 탑이다.

근대화가 한창이던 1960~70년대는 기념비적 동상을 건립해 우리 국민의 정신을 고취하고자 하는 붐이 일었다. 이 ‘3·1독립선언기념탑’을 위해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거뒀고,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박정희 의장이 특별기금까지 더해 520여만원이 모였다. 1963년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만세운동의 진원지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총 7.9m 높이의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막식은 성대했다.


17년 후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서울시의 공원재정비라는 명분을 받아들여 기념탑의 철거를 눈감아 줬다. 무단 철거로 동상의 깃발이 부러지는 등 수난을 겪었고 작품은 삼청공원에 천막을 덮어쓴 채 방치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것은 내 몸뚱이를 쓰러뜨린 것보다 훨씬 더 한 처사였다. (중략) 다시 세울 형편이 안 되면 그것을 녹여서 토큰을 만들어 800만 서울시민에게 한 개씩 나눠줘라!”

1963년 김종영이 처음 제작하던 ‘3·1독립선언기념탑’의 모습.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이 사건으로 작가는 울분을 터뜨렸고 지병이 깊어져 세상을 등졌다. 우여곡절 끝에 작가 사후인 1991년 서대문독립공원에 복원된 기념탑이 다시 세워졌다.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3·1운동 100주년 특별전으로 마련한 ‘김종영 공공기념조형물 그리고 지천명’에서 그 사연을 드로잉,사진,기록물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3·1독립선언기념탑을 세운 후 50세의 지천명(知天明)에 이른 김종영은 그 유명한 대표작 자각상(自刻像)을 만들기 시작해 자아 성찰의 태도를 보여줬다.

김종영은 명성에 비해 대규모 공공 조형물 작업에는 소극적이었다. “나는 사실적인 것은 못하네”가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그의 대답이었다. 이례적인 공공조형물이 3·1독립선언기념탑과 1957년에 세운 ‘포항 전몰학도충혼탑’이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포항 전몰학도충혼탑 제작 때는 당시 전국학도호국단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보태기도 했다”면서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김종영 선생은 민족 공동체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온 국민 성금으로 의뢰한 작품만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시 전경.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전시에서 눈여겨 볼 것은 1953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무명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조각 콩쿠르 출품작인 ‘여인 누드 입상’에 관한 자료들이다. 당시 심사위원장은 영국을 대표하는 조각가 헨리 무어였고, 한국인의 국제 조각전 수상은 최초였다. 무료관람이며 6월23일까지 전시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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