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10년씩이나 검토해야 하는 사안일까.’ 지난 18일 금융위원회의 금융소비자 보호 종합방안을 보고 든 생각이다. 종합방안에는 보험 가입자로서, 의료 소비자로서 관심이 많았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빠졌다. 금융위는 “관련 부처와 꾸준한 협의가 필요하다”며 계속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미 10년 전인 2009년 청구 간소화와 관련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고 이후 지겨울 만큼 논의가 계속됐는데도 말이다.
병원 진료 후 따로 증빙서류를 떼 보험사에 보내는 수고를 줄이자는 것이 청구 간소화의 취지다. 어차피 병원이 진료 기록을 갖고 있으니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거쳐 보험사에 전산으로 전송하자는 것이다. 보험·의료 소비자는 수고를 덜 뿐 아니라 그동안 귀찮아서 청구하지 않았던 소액 보험금도 빠짐없이 챙겨 받을 수 있게 된다.
반면 의료계는 보험금 지급 거절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평원을 통해 보험사가 가입자의 의료 정보를 축적해 보험금 지급 거절의 근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의료계는 의료 기록 등 개인정보 유출도 우려하고 있다.
어느 쪽 말이 옳을까. 처음에는 ‘가입자 편의’를 내세우는 보험사의 의도를 의심했다. 하지만 양쪽의 주장을 들을수록 의료계의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았다. 건강보험·자동차보험은 이미 심평원이 자료 전송 업무를 맡고 있지만 보험금 지급 거절이 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 또 일부 대형병원과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협력해 청구 간소화를 실시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역시 별 탈이 없다. 의료계가 구체적인 사례도 분석도 없이 걱정만 늘어놓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녹색소비자연대·서울YMCA 등 소비자단체 7곳도 보험사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국내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약 3,400만명이다.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이 많은 가입자가 매번 직접 보험금을 청구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의료계의 빈약한 논리 때문에 결국 의료·보험 소비자들이 홀대받는 셈이다. 이제라도 신속한 제도 개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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