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시] 사라져가는 '천재 건축가' 김수근의 흔적들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철거 이어
종로 세운상가도 재개발 앞둬
조선백자 곡선美 살려 아늑함 더한
올림픽주경기장은 리모델링 추진
-남아있는 김수근 건축물은
담쟁이 외관…자연 녹아든 '舊 공간사옥'
창밖으로 펼쳐진 장대한 풍경에 매료
창 하나없이 무심한듯 서있는 '경동교회'
빛 비추는 방향따라 건물 모습 바뀌어

지난 2016년 10월.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서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켜온 ‘라마다 르네상스호텔’이 철거됐다. 오는 2020년 상반기에 새 빌딩으로 탄생을 앞두고 있다. 이 건물은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 건축가인 고(故) 김수근씨의 작품이다. 새 건물은 ‘김수근의 르네상스호텔 디자인’을 반영하는 조건으로 설계된다고 하지만 김씨의 자산은 사라지는 셈이다. 재개발을 앞둔 종로의 세운상가도 예외는 아니다. 이 건물도 김씨가 관여했다. 세운상가 역시 앞으로 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한국의 로렌초’로 불린 한국 현대건축의 대가 김수근. 그는 자신의 건축물에 자신이 고민해온 ‘모태적 공간’ 개념을 담아 아늑하면서도 가변적인 구조를 선호했다. 건축물은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아닌 인간이 가장 친숙하고 아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1970~1980년대 지어진 그의 상당수 건물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많은 곳에서 김씨의 정신이 문화적 자산으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전경. 부드러운 곡선의 스카이라인이 김수근씨의 콘셉트이다. /사진제공=서울시


<‘아늑함’ 품은 대형경기장>

아늑함을 추구했던 그는 역설적으로 ‘가장 웅대해야 하는’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설계하면서도 자신의 공간개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 전통문화를 건축에 접목하는 것을 꾸준히 고민해온 그는 조선백자의 유려한 곡선미를 차용해 올림픽주경기장의 지붕 곡선을 그렸다. 88올림픽을 치른 초대형 경기장이지만 부드러운 곡선의 스카이라인으로 감싼 탓에 웅장함에 앞서 아늑함을 느끼게 된다.

올림픽주경기장은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40만㎡ 대형 부지의 잠실종합운동장 부지의 메인을 장식하는 경기장이다. 관중석 7만석에 최대 10만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연면적 13만3,649㎡에 잔디 축구장과 400m 육상트랙 8레인이 설치된 다목적 초대형 경기장이다. 당시 그와 함께 올림픽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했던 김남현 공간건축 고문은 “당시 그는 ‘건물이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 싫다’며 거대구조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술회했다.

최대 10만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에 국내 최초로 지붕까지 덮은 잠실주경기장은 필연적으로 거대구조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기장 뒤쪽으로 탄천 제방이 있는 것에 착안해 제방에 데크를 설치하도록 했다. 데크로 시야를 막아 ‘시각적으로’ 경기장이 작아 보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올림픽주경기장은 예술적 형태뿐 아니라 과학적 설계도 훌륭하다. 경기장은 스탠드 1층과 2층을 분리했고 출입구 54개소를 균일하게 배치했다. 여기에 동선을 효율적으로 계산해 넣어 10만명의 관중이 30분 내에 모두 퇴장할 수 있도록 했다.

준공 30년을 넘긴 올림픽주경기장은 시설 노후화, 사후활용 문제 등으로 리모델링될 예정이다. 관중석 규모가 7만석에서 5만석으로 줄어들고 스카이 데크가 설치되는 등 여러 모습이 변하지만 경기장의 역사적 가치를 계승할 수 있도록 김씨가 설계한 외관은 최대한 유지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전경. 건축사무소 ‘공간’의 예전 사옥이었으며 벽돌건물·통유리건물·한옥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서울경제DB


<자연과의 조화 추구한 ‘구 공간사옥>

근대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폭포 안에 지은 주택 ‘낙수장(falling water)’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연환경에 녹아드는 건축 디자인의 표본을 제시했다. 들어가 보면 천정이 낮고 아늑한 느낌을 주지만 바깥으로 보이는 웅장한 자연 풍광이 시선을 압도한다.

1971년 설계 후 4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옛 공간사옥)’는 김씨가 간접적으로 라이트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공간개념을 적용했다. 처음 이 건물에 들어선 사람들은 좁고 복잡해 당황하기 일쑤다. 방들은 벽과 천정 모두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이 좁고 각 층은 반 층씩 교차돼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마저 든다. 모든 것은 그의 치밀한 공간 계산에 따른 결과다. 그는 공간을 설계할 때 인간의 몸 크기를 기준으로 잡았고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공간이 연출되기를 바랐다. 실내는 아늑한 품과 같지만 낙수장과 비슷하게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창덕궁 내 돈화문과 후원, 여러 건물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외관 또한 자연의 모습을 그린 듯 담쟁이넝쿨로 둘러 하나의 자연물처럼 묘사했다.

이 건물은 공간건축사사무소의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이후 두 번의 증축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완성했다. 직원이 점차 늘면서 김씨의 제자이자 공간 2대 소장이었던 장세양 건축가는 건물 증축에 나서는데 이때 건물의 외관을 통유리로 만들어 ‘1대 사옥’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 이후 한옥 형태의 세 번째 사옥이 추가로 증축됐다. 김씨가 설계한 사옥은 201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공간건축사사무소는 김씨 사후인 2013년 부도로 건물을 아라리오 갤러리에 매각하고 서울 중구 필동으로 옮겼다.

경동교회 외관. 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외관의 모습이 다채롭게 바뀐다. /사진제공=김수근문화재단


<빛과 벽돌로 지은 시, 경동교회>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에 위치한 경동교회는 십자가가 없다. 밖에서 보면 유리창도 하나 없다. 1980년 지어진 이 붉은색 벽돌건물은 중세 유럽의 수도원처럼 그저 무심한 듯 견고하게 서 있을 뿐이다. 교회로 들어가려면 교회 외벽을 따라 이어진 길을 걸어야 한다. 이 계단길은 골고다길이라고 불리는데 예수가 최후의 순간 걸었던 골고다언덕을 상징한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가는 과정 또한 신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도심 복판에 위치한 경동교회가 세속과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기를 바란 그의 바람이 담긴 구조이기도 하다.

건물은 여러 기둥이 세워져 있는 형태인데 실루엣을 보면 마치 기도하기 위해 두 손을 모은 형상을 닮았다. 외벽의 모든 벽돌은 일일이 깨어 붙였다. 외관은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를 반복하는데 이 때문에 햇빛이 비출 때마다 건물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는 생전 건축을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표현했는데 경동교회에 딱 맞는 표현인 셈이다.

실내 예배당은 김씨가 즐겨 사용했던 노출 콘크리트로 조형됐다. 좌측의 대형 파이프오르간이 눈길을 끈다. 동굴 같은 실내는 경건하면서도 평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배당 가운데를 차지한 십자가 위로는 천장에서 은은한 빛이 쏟아져 내린다.

그는 ‘왜색 논란’을 빚은 국립부여박물관을 설계한 후 한국 건축의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쏟았다. 그는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 죽을 때까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공부했다. 김 고문은 “그는 ‘한국 건축의 전통을 부지런히 배우고 소화해서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갖고 갈 수 있는 유산이 된다”고 말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그의 흔적이 한국 건축의 가치가 된 이유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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