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가 2년6개월(10분기)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에 지난해 4·4분기에 이어 올 1·4분기도 ‘어닝쇼크’를 이어갔다. 예고된 실적 악화에 시장 충격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여기다 4월 낸드플래시 메모리가격이 반등세를 보이는 등 바닥을 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점도 시장 충격을 흡수했다. 가격 회복 조짐이 보이면서 SK하이닉스는 이번 실적 발표에서 하반기 실적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2·4분기 들어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수요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 조정을 통해 가격 하락에 대응하겠다는 뜻도 나타냈다. 특히 낸드의 경우 설비 전환에 따른 생산 감소로 수급 불균형 해소와 가격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며 D램도 추가로 생산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25일 SK하이닉스는 연결재무제표 기준 1·4분기 영업이익이 1조 3,665억원으로 전 분기(4조4,301억원) 대비 69% 감소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호황으로 분기 영업이익이 최대 6조원에 달하기도 했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황의 급냉각으로 실적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 1·4분기 영업이익은 시장전망치(1조4,049억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며 지난 2016년 3·4분기(7,260억원) 이후 10분기 만에 가장 부진한 실적이다. 매출액은 6조7,727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32% 줄었다. 영업이익은 전 분기의 3분의1 수준이다. 지난해 50%를 웃돌았던 영업이익률도 20%로 추락했다.
SK하이닉스의 실적 부진은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와 급격한 가격 하락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대 고객인 데이터센터 업체들의 구매 지연과 모바일 수요 둔화로 직격탄을 맞았다. D램과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올 들어서도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 3월 D램 고정거래가격은 개당(DDR4 8Gb 기준) 4.56달러로 전월 대비 11.11% 하락하는 등 세 달 연속 두자릿수 이상 빠졌다. 낸드 가격도 4개월 연속 하락세다.
다만 10분기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실적 회복에 대한 가시성은 높아졌다는 평가다. 올 초 전망했던 ‘상저하고’ 흐름이 보다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차진석 SK하이닉스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부사장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2·4분기 D램 시장은 모바일과 서버향 제품 수요가 그간 하락 추세에서 벗어나 개선되기 시작할 것”이라며 “모바일 D램은 6기가에서 12기가바이트에 이르는 고용량을 탑재한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서버 D램은 고객들의 재고 감소와 투자로 분기 후반부로 갈수록 수요 회복세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석 D램 마케팅 담당 상무도 “서버 수요는 2·4분기부터 소폭 회복되고 3·4분에는 계단 형태로 수요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3개월 전과 비교해 구체적인 증거들과 확신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낸드 전망과 관련해서 차 부사장은 “가격 하락이 일 년 이상 지속되면서 낮아진 가격으로 수요의 탄력적인 증가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모바일향의 고용량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며 “2·4분기부터는 수요 회복에 가속도가 붙고 가격 하락 속도도 진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국계 증권사 연구원도 “1·4분기 실적은 예상했던 수준이라 충격이 크지 않다”며 “오히려 하반기 시황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수급불균형에 따른 가격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속도를 조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차 부사장은 “D램의 경우 추가 웨이퍼 캐파(생산 능력) 증설 없이 공정 미세화를 통해 수요 증가에 대응할 방침이며 낸드는 M15 신규 펩의 생산 확대에 대해 수요 상황을 반영해 당초 계획보다 천천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낸드 웨이퍼 투입량이 지난해 대비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콘퍼런스콜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변동성이 커지면서 수요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김석 상무는 “3~4년 주기의 큰 변동이 고객과 부품사 모두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변동성을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를 고객들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